안산 분향소에 갔습니다. 유족분들이 모인 천막에서 스물은 되었을까 싶은 젊은 여성이 한 명 나옵니다. 꺽꺽 숨이 막힐 정도로 웁니다. 이번 사고에서 여동생을 잃었답니다. 엄마가 슬퍼할까봐 부모님 계신 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다가 눈물이 터지길래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분향소에서도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성이 꺽꺽 울면서 나옵니다. 어두운 저쪽 벤치에서 또다른 스무살 아가씨가 울고 있습니다. 둘 다 친구 동생을 잃었답니다. 며칠을 분향소로 온답니다.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잃지 않은 사람도 모두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잠을 뒤척이게 됩니다.
희생자 부모님들이 모입니다. 집으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이 보여서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합니다. 유족들과 모이면 되려 잃어버린 가족이 생각나 연락을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들과 둘이 살던 아버지 한 분은 아예 집을 버리고 찜질방을 전전한다고 합니다. 술로 세상을 보내는 분도 있습니다. 남편과 다른 유족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의 장례를 수습한 후에는 나도 따라서 떠나야지’ 하는 생각만 했다는 아내도 있습니다. 게임 많이 한다고 수학여행 가기 두 달 전 휴대전화를 압수했다는 아버지는 압수한 것이 가슴에 사무치고 휴대전화가 있어서 ‘곧 구조대가 갈 테니까 시키는대로 하라’고 통화했던 가족은 그 통화를 저주합니다. ‘어서 아이를 만나 때리면 맞고 원망하면 다 듣고 싶다’고 합니다. 이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족을 잃은 억울한 피해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괴로워해야 합니다.
분향소 옆에는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서명을 요청하는 이들은 입술이 바싹 말라있고 얼굴이 까칠합니다. 알고 보니 유족들입니다. 왜 유족들이 이런 역할까지 해야 하나요. 심지어는 유족들을 모욕한 KBS 보도국장에게 항의한다고 언론사로 달려가 밖에서 밤을 꼬박 새기도 했습니다. 항의가 통하지 않자 청와대로 갔지만 멀찍이서 길이 막혔습니다. ‘언제든 오라’던 대통령은 비서실 사람을 보내서 대표만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작 막말한 보도국장이 자리만 옮기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후에도 유족들을 무슨 이익이나 보려는 사람들처럼 망언을 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엄주웅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이런 표현을 합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는데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보니 사람과 짐승으로 나뉜다.”국가가 잘못해서 가족을 잃은 것만 해도 황망한데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이들을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슬퍼할 시간도 모자라는 유족들을 싸우게 만드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들입니까?
유족들이 왜 진상규명을 호소해야 하고 유족들이 왜 억울한 소리를 듣고 유족들이 왜 나서서 싸움을 해야 합니까?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충분히 슬퍼하고 마음을 추스려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수원에도 유족들이 달려가야 유병언을 찾을 수 있나요?’를 물어야 할 만큼 수사가 시원하지 않습니다. 구조를 손놓은 해경과 안전행정부, 국방부, 그리고 이 모든 부서의 지휘 책임이 있는 청와대에 책임소재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아직도 목청껏 가족을 찾아달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도 누구는 생활비를 받았네, 학생 유족과 일반 유족에 대한 관심이 다르네 하며 희생자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 유족들은 자신이 책임이 있나 괴로워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족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이제는 좀 웃을 수 있는 그런 권리가 주어져야 할 시간이 아닙니까? 살아남은 이들이 웃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그 기억 속에서 떠난 사람도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 살 겁니다. 그러니 제발 유족들은 그만 싸우게 해주십시오. 당신들이 인간이라면 어서 진실을 밝히고 처벌을 받으십시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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