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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위 살인

입력
2014.05.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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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한 1977년의 이리역 폭발사고 원인은 세월호 참사처럼 황당하다. 인천에서 광주로 가던 화약운송 열차는 이리역에서 40시간이나 멈춰 섰다. 화약류 등 위험물은 역을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데 급행료 문제로 시비가 붙어 역무원들이 마냥 붙들어둔 것이다. 화약열차 호송원은 홧김에 술을 마신 뒤 열차에 촛불을 켜놓고 침낭에 들어가 잠들었다. 불이 난 걸 알고 깨어났으나 진화가 여의치 않자 달아났고 불은 화약상자에 옮겨 붙어 연쇄 폭발했다. 당시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 화약 수십 톤이 실려 있었다.

▦ 현장에서 도주했다 검거된 호송원에게 검찰은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폭발물파열죄라는 생소한 혐의를 적용했다. 실화죄 보다 형량이 높은 폭발물파열죄를 적용하면서 형법 18조에 명시된 ‘부작위범’을 원용했다. ‘위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위험 발생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않은 때에는 그 결과에 의해 처벌한다’는 규정이다. 대법원은 “화약 호송책임자로서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했고 이를 방치하면 열차의 화약이 한꺼번에 폭발하리라는 점을 예견하면서도 도주했다”며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세월호 이준석 선장 등 선원 4명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 등이 적용됐다. 사고 당시 승객들이 위험에 처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는 법조계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지금 구조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 텐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를 입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세월호 사건과 유사한 1970년의 남영호 침몰사고 때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함께 적용했으나 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만 인정했다. “선장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고 발생을 예견하면서까지 과적 운항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봤다. 엄벌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 주목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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