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5개월만인 지난해 11월 단청이 훼손되면서 불거진 국보 1호 숭례문을 둘러싼 부실 시공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짧은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각종 편법이 동원되다 보니 고스란히 졸속 공사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관리ㆍ감독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감사원은 15일 이런 내용의 ‘문화재 보수 및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숭례문 복원 사업은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문제투성이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된 직후인 2008년 5월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을 만들고 전담 복구단과 전문가 자문단까지 발족, 사업 전반을 관리토록 했다. 자문단은 이에 따라 전통기법을 활용해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부실 복원의 조짐은 공기(工期)를 5년으로 정했을 때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전통 기법을 재현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도 문화재청이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도식적으로 일반공사보다 1~2년 많은 5년을 시한으로 설정한 것.
공기 완수에 집착한 탓에 문화재청은 또 단청 제작 총책임자인 홍창원 단청장의 명성만 믿고 검증되지 않은 기법을 허용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홍씨는 전통 단청의 원료인 수간분채나 아교 활용에 대한 시공 기술이 없다. 경험이 전무한 책임자가 공사를 관장하다보니 아교가 흘러내리고 색이 흐려졌고, 사용이 금지된 화학 접착제와 안료를 몰래 섞어 덧칠한 짝퉁 단청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홍씨는 값싼 화학 접착제를 밀반입하는 과정에서 3억원 부당이득을 챙기기까지 했다.
문화재청은 주요 복원 재료인 기와도 졸속으로 시공했다. 면밀한 고증 끝에 2011년 4월 규격을 마련했지만, 시공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아무 설명 없이 KS 규격으로 바꿨다. 지반 높이를 재조정하는 작업은 고증이나 자문 같은 준비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문화재는 다른 분야와 달리 끈기와 인내를 갖고 복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한 때문에 속도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제2, 제3의 숭례문이 재연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숭례문 외에도 전국 9개 시ㆍ도에 산재한 문화재 92건을 조사했는데 행정 편의주의 관행으로 인해 보수는 물론 감리와 예산관리, 안전 점검 등 전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경북 경주의 국보 31호 첨성대가 지반침하 탓에 북쪽으로 20여㎝ 기울어진 채 방치된 게 대표적이다. 지금도 매년 1㎜ 정도씩 기울고 있으나 경주시는 지반상태 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이 예산(긴급사업보수비)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보물 1211호인 반야바라밀다심경략소(책자)는 곰팡이가 피어 보존처리가 시급하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 신청이 없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숭례문 단청과 지반, 기와를 다시 시공하라고 통보했다. 재시공에는 21억원의 국고가 다시 투입돼야 한다. 또 복구 관리를 부실하게 한 숭례문 복구단장 등 5명의 징계를 나선화 문화재청장에게 요구했고, 사업비를 착복한 단청장 홍씨에 대해서는 사기 혐의로 이미 3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2개월 내에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이행할 세부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반을 낮추는 공사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단청은 1970년대 이후 전통기법의 명맥이 사실상 끊겨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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