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1시쯤 서울 성북구 고려대 후문에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대학생 8명이 모였다.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글이 적힌 흰색 종이와 국화 한 송이를 들고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약 30분간 학교 안을 돌며 추모행진을 했다. 김세정(22ㆍ미디어학부)씨는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때문에 세월호에서 희생됐다”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 여섯 글자를 적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가만히 있으라’ 추모행진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 청년들의 사회문제 참여를 촉구하며 붙인 한 장의 대자보로 촉발된 ‘안녕들하십니까’ 열풍과 비슷한 양상이다.
‘가만히 있으라’ 추모행진은 지난달 29일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용혜인(25ㆍ여)씨가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우리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요?’란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용씨는 “세월호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선내방송 ‘가만히 있으라’에서 착안했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젊은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용씨의 제안으로 서울 홍대입구역에 100여 명의 젊은이가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를 들고 모여 들어 첫번째 침묵행진을 벌였다. 이달 3일에는 홍대입구역과 서울 명동, 서울광장에서 두번째 ‘가만히 있으라’ 행진이 벌어졌고, 10일에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는 경기 안산에서 세번째 침묵행진이 진행됐다.
용씨가 제안한 것 외에도 자발적인 침묵행진이 대전(2일), 경북 구미(5일), 전북 전주(6일), 부산(7일), 인천(9일)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용씨는 18일 홍대입구역 등에서 네번째 ‘가만히 있으라’ 행진을 제안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침묵행진에 동참하자는 자발적인 제안이 잇따르고 있어 이날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가만히 있으라’ 행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12월10일 고려대 정경대학 게시판에 손 글씨로 써서 붙인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삽시간에 전국 대학가로 퍼져 나간 것과 비슷하다. 많은 이들이 호응하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런 현상 자체가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닮았다. 임모(24)씨는 “대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안녕들하십니까’ 때처럼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연세대 이화여대 총학생회 등 12개 대학 학생 530여명(경찰추산)이 모인 ‘세월호 참사관련 공동행동을 위한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도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를 열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외치며 오후 9시쯤까지 종로 보신각으로 행진했다. 사회를 맡은 임승헌 경기대 총학생회장은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며 시민들과 많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행진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신대 학생 3명은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 기도회’에 참석해 삭발식을 가졌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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