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더 말랑말랑했으면 원이 없겠다.”
떡 장수들의 소박한 바람은 쉬 이뤄지지 않았다. 구운 떡은 신석기, 찌는 떡은 원(原)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떡의 유구한 역사를 감안하면 하루 만에 딱딱하게 굳는 떡의 속성은 숙명이라 불려도 틀린 말이 아닐 터. 먼 훗날 후손들은 장삿속으로 화학첨가물을 넣어 떡의 굳는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이다.
한귀정(49) 농촌진흥청 가공이용과장이 2008년 난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섰다. 일일 유통이던 떡을 이틀 유통으로 늘려달라는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쉽게 굳는 떡의 속성은 당시 한창 뜨던 쌀 소비 권장을 막는 주범이기도 했다. 1997년부터 떡 연구를 시작해 3년 만에 냉동 떡을 개발한 그에게 새롭지만 무모한 도전이 펼쳐진 셈이다.
무려 3년의 시간과 매일 쌀 20㎏씩 1,024번의 떡을 찐 뒤에야 답이 나왔다. 멥쌀이든, 찹쌀이든, 수수이든 그 어떤 곡류로 떡(단 시루떡은 제외)을 만들어도 영원히 굳지 않는 떡은 2010년 12월에 특허를 받았다. 2011년 6월 굳지 않는 떡이 처음 시중에 나왔고, 현재 기술이전이 이뤄진 떡 업체만 290개가 넘고, 해외에서도 생산(3곳)되고 있다. 냉동 6개월 이상, 냉장고에서 7~15일 저장되는 유통혁신 등에 따른 경제파급 효과는 1조3,072억원으로 추산된다.
한 과장은 어릴 적 다양한 떡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할머니가 인절미 시루떡 찹쌀떡 한과 등을 만들 때면 꼭 보고 듣고 느끼게 해줬어요. 떡마다 지닌 제작 과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절히 배합했더니 떡이 굳지 않더라고요.”
그의 특허 기술은 떡 안의 물 분자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구조를 특성화한 것이다. 한과와 다양한 떡에서 응용한 4가지 기법을 동시에 적용했는데, 대표적인 게 떡메 치기다. 그는 “떡메처럼 인절미를 만들 때 쓰는 기계(펀칭)의 사용방법을 강도와 시간 면에서 조금 달리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완성 뒤 기술은 간단해 보이지만 시행착오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한 과장은 “기본원리를 가정한 뒤에도 솔직히 확신이 없었고, 매일 떡을 찌고 며칠이고 굳는지 여부를 기다리면서 반복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의 노고 덕에 우리는 2011년 6월 이후부터 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굳지 않는 떡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스티로폼에 떡을 담아 랩으로 싸던 방식에서 벗어나 낱개포장 등 떡의 고급화에도 일조했다.
그는 굳지 않는 떡 개발 뒤 한시름 놓기는커녕 오히려 일이 늘었다. “처음에는 떡 업체에서 ‘제발 하루만 더 굳지 않게 해달라’더니, 이제 ‘떡이 달라붙지 않게 해달라’ ‘영원히 굳지 않으면서 상하지도 않게 해달라’ 등 각종 요구를 하고 있거든요.” 현재 그는 제빵기처럼 손쉽게 떡을 만들 수 있는 일체형떡제조기를 연구하고 있다.
한 과장은 세계 최초로 ‘굳지 않는 떡’ 원천기술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16일 특허청 주최 49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청정인삼 수경재배 기술을 개발한 김용범 박사(산업통상자원부장관표창), 농업인 건강보호장비를 만든 이경숙 박사와 화분매개곤충인 뒤영벌의 산업화에 성공한 유형주 박사(이상 특허청장표창) 등 동료들도 함께 수상한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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