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둑이 다시 일어서는 것일까. 한동안 세계 바둑계에서 한국과 중국에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일본이 뜻밖에 세계신예대회서 우승과 준우승을 석권했다.
11일 도쿄에서 열린 2014 글로비스배 세계바둑 U-20 결승전에서 일본의 이치리키 료(17)가 역시 일본기원 소속인 쉬자위안(17)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두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됐던 중국의 롄샤오(20)와 샤천쿤(20)을 나란히 제압, 세계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 선수끼리 세계대회 결승전을 치른 건 메이저대회는 물론 여자, 신예대회를 통틀어 1997년 제10회 후지쯔배(고바야시 고이치-왕리청)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이 올해 창설한 글로비스배는 세계 각국에서 만 20세 이하 신예 강자 16명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주최국인 일본이 6명, 중국과 한국이 3명씩 참가했고 대만, 호주, 북미, 유럽에서 각기 1명씩 출전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나현(20), 최정(18), 신진서(14)가 출전해 나현과 신진서가 8강에 올랐지만 나현은 이치리키에, 신진서는 롄샤오에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얼마 전 중국에서 개최된 리민배서 출전선수 26명 전원이 예선 탈락, 단 한 명도 본선에 오르지 못한데 이어 이번 글로비스배서도 중국과 일본에 완벽하게 밀렸다. 세계무대서 완전히 동네북 신세가 된 셈이다.
이치리키 료는 2010년 입단, 2012년에 신예기전인 제4기 오카게배와 제8기 히로시마알루미늄배에서 우승했지만 세계대회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2011년부터 각종 세계대회 예선에 8번 출전했으나 단 한 번도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작년 말에 열렸던 한일 국가대표 상비군 평가전에서도 1승 4패로 부진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일본 최대 기전인 기성전 본선 리그에 사상 최연소(16세 9개월)로 진출해 크게 주목을 받더니 마침내 세계신예대회 우승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 출신 관서기원 소속기사인 홍맑은샘 2단이 입단 전에 오랫동안 그를 지도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쉬자위안은 대만 출신으로 2013년 일본기원 소속기사가 됐다. 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 16강전에서 롄샤오에게 졌지만 최정에게 2승을 거둬 2승 1패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른 후 리친청과 샤천쿤을 차례로 꺾었다. 세계대회에는 지난 3월 제2회 백령배 예선에 처음 참가해 1회전에서 한국의 한승주에게 이겼지만 2회전에서 박영롱에게 져 탈락했다. 그에 앞서 한일 국가대표 상비군 평가전에서 신민준, 최정을 꺾는 등 4승 1패를 기록했고, 지난달 중국 병조리그에 일본팀 소속으로 출전해 7전 전승을 거뒀다.
일본 바둑계는 지난해 이야마 유타가 제25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서 우승해 8년 만에 일본 선수가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른데 이어 올해는 신예 유망주들이 자국이 주최한 첫 세계대회서 한국과 중국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우승, 준우승을 싹쓸이해 온통 축제 분위기다. 특히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졌던 일본 바둑 중흥을 위해 지난해 바둑국가대표팀 ‘고 고 재팬’을 창설, 운영한 지 만 1년 만에 거둔 성과여서 더욱 기쁠 것 같다. 어쩌면 일본 바둑이 세계무대서 다시 화려하게 일어서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지도 모른다.
이 대회를 주최한 일본 글로비스사도 대성공을 거뒀다. 그동안 세계대회서 일본이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일본이 주최하는 국제기전은 2011년 제24회 후지쓰배를 끝으로 사라졌는데 3년 만에 부활한 첫 세계대회가 바로 글로비스배다. 호리 요시토 글로비스사 대표는 “일본의 신예기사들이 세계무대를 주름잡을 수 있게 하고 싶어 20년, 30년 뒤를 기대하면서 대회를 후원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는데 첫 해에 바로 소원을 이룬 셈이다.
글로비스배 우승 상금은 300만엔(약 3,000만원). 4강 진출자에게는 오는 10월 중국 항저우서 열리는 리민배 본선 출전권이 주어진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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