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51번째 스승의 날이었다. 여느 해라면, 스승의 날은 교직의 선생님들이 학생들로부터는 카네이션과 감사선물도 받고 졸업생들로부터 간만의 안부 인사를 받아보는 즐거운 호사를 누리는 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스승의 날은 모든 선생님이 무겁고 참담한 마음으로 맞이할 것 같다. 수많은 어린 고등학생들과 여러 동료교사를 비명횡사로 떠나보낸 세월호의 참사는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특히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더한 애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서 교원단체들도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대신하여 애도의 주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마음을 참담케 하는 것은 비단 눈앞에 벌어진 세월호 비극만이 아닐 듯하다. 크고 작은 학교에서 복무하고 있는 그들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치고 마음을 길러주신’ 스승의 은혜와 갈수록 멀어지는 교육현장의 변화가 암담하기만 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현장이 성적경쟁, 입시경쟁, 취업경쟁, 순위경쟁 등으로 휩싸이고 있으니 선생님들은 더 이상 사람됨을 키우는 스승의 본분을 지키기가 어렵기만 하다. 학벌 사회에서 자녀 입신을 위해 쏟는 학부모들의 과잉 열정이 성적관리나 대학입시에 능한 사교육을 지나치게 키우는 대신 초중등학교의 교실에 선생님들의 훈육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교실 안 선생님의 무너진 권위는 공교육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교육시스템의 비정상화에 따른 많은 폐해를 우리 사회에 안겨주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의 조기유학을 위한 자발적인 이산가족이 속출하는 것이나 계층 및 지역 간의 교육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는 것 모두 공교육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응당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학으로 눈을 돌려봐도 그리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때 진리 탐구와 더불어 사회의 지성을 배출하는 상아탑으로 일컬어지던 대학은 이제 취업준비를 위한 스펙쌓기의 교육과정으로 변질되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는 기업경영방식을 받아들여 학부모라는 소비자에게 자녀취업을 위한 최선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교육상품화의 논리가 공공연하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대학들에서는 국내외의 서열경쟁을 명분 삼아 교수들에게 보다 많은 연구실적 산출과 연구비 수주를 요구하는 한편, 학생취업에 저조한 학문분야의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이 같은 대학구조개혁 열풍 속에서 업적경쟁에 내몰리는 교수들은 논문제조 또는 연구프로젝트의 달인으로 변신하여 A등급으로 인정받거나, 이에 반하여 본연의 학문 탐구와 제자 지도를 고집하는 경우 D등급의 무위도식자로 낙인찍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수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진학한 대학생들이 취업학원으로 변질되어 참된 배움이 사라진 대학교육을 질타하며 ‘떳떳하게’ 자퇴하는 가슴 아픈 일이 연이어 벌어지기도 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각급 학교의 선생님들이 놓인 상황이나 처지를 돌아보면 참으로 갑갑하고 우울해진다. 교육이 수단화되는 현실 속에서 선생님들이 스승의 본분을 지키기가 난망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의 사회적 신망도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교사나 교수를 대하는 주위 태도 역시 정년 보장이나 후한 퇴직연금 등을 주는 훌륭한 직업이라 부러워할지언정 이들이 맡은 교직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위기를 거의 찾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혈육을 낳아 길러주는 어버이의 정이 변함없듯이, 교육현장에 어떠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도 제자들이 잘되길 바라는 선생님의 애틋함도 한결같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선생님들도 제자 사랑을 실천하기에 스스로 안일하거나 부족한 점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다음 스승의 날에는 오늘 선생님들이 느끼는 갑갑함을 얼마라도 치유하고 그들의 보다 활력있는 교단을 만들어가는 학교현장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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