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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GE·허니웰 합병 시도 발단, 국가별 서로 다른 경쟁법 충돌 차단, 논의의 場으로

입력
2014.05.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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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잡는 데 뭐가 좋을까?”(전두환 대통령)

“공정거래법이란 것이 있는데…”(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그럼 그거 해”(전 대통령)

공정거래법(경쟁법) 제정에 얽힌 일화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군부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된 후 4달쯤 지난 무렵이었다. 재계는 박정희 정권 동안 경쟁법 제정을 막아냈지만 신군부의 위세에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전 대통령이 내용도 잘 모르고 만든 법이 이후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1979년 경제위기 당시 재벌은 물가를 치솟게 만드는 책임자라는 여론이 비등했고, 이런 여론의 힘이 경쟁법 도입이 성공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미국이 1890년 세계 최초로 경쟁법을 만들었는데, 당시 기업집단의 횡포로부터 중소상인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한국은 물가안정과 경제구조 개선이 법 탄생의 주요 배경이었기 때문에 이름은 같아도 구체적 법 조항에서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경쟁법 국제협의체인 국제경쟁네트워크(International Competition Network)가 탄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ICN은 나라별로 경쟁법이 다른 탓에 발생하는 충돌을 막기 위해 2001년 창설됐다. ICN 총회에는 세계 115개국 경쟁당국이 모여 새로운 경제현상에 대해 토론하고 정책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세계의 공정위인 셈이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 직접 경쟁법을 이식하기도 했다. 독일의 첫 경쟁법은 영?미 군정이 1947년 제정했고, 일본 경쟁법도 미국이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며 나라별로 다양해졌다. 독일은 경제력 집중이 민주주의의 주요 위협이라고 여겨 경쟁법의 우선순위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는 시장을 만드는 데 둔다. 반면 미국 경쟁법은 중소기업 보호보다는 시장 효율성과 소비자 복지 증대를 중시한다. 일본과 프랑스는 경쟁법으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반면, 영국과 이탈리아, 유럽연합(EU)는 국민기업을 육성한다. 경쟁법으로 위기산업을 지원하는 나라(EU, 일본)도 있다. 이처럼 목적에 따라 구체적 정책이 달라지면서 각국의 경쟁당국은 모두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종 ‘무엇이 공정한가’를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된다.

2000년 제너럴일렉트릭과 허니웰의 합병 시도는 ICN 창설의 직접적 계기였다. EU는 합병으로 탄생할 거대한 항공분야 기업집단이 시장 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해 합병을 승인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GE가 일부 사업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는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서로 판단 기준이 달랐던 것이다.

미국은 EU가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했으나, EU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미국기업인 GE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후 두 나라 경쟁당국의 힘겨루기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결국 미국 주도로 ICN이 탄생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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