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 15일로 한 달.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물론 실소유주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일가, 해운업계 전반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펼쳐지고 있지만, 304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참사의 실체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스스로 배 밖으로 나온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데 그쳐 피해를 키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해난구조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됐을 뿐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참사의 근본 원인인 얽히고설킨 부실과 유착의 뿌리까지 파헤치는 철저한 진상 규명 없이는 희생자 가족 위로와 사고 재발 방지는 요원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사고 대처 과정에서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낸 정부에 진상 규명을 맡길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시민사회 주도로 독립된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의 권영국 위원장은 14일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정부에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진상 규명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국가가 재해 예방과 국민 생명 보호의 의무가 있는데 정부도, 대통령도 책임이 없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 자체가 진상 규명의 범위를 제약하고 본질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검ㆍ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나 감사원 감사 같은 정부 주도의 진상 규명 작업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단원고 희생자의 아버지는 정부 주도 진상조사에 대해 “사고 책임자가 스스로 조사하는 꼴이어서 ‘성역 없는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위원장은 “합수부 수사는 형사 처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세월호 선원 등의) 행위 중심으로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서 “부실한 구조,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의 배경에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나 유착관계가 있었는지 근본적인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대형 재난사고 때마다 정부는 단기간에 보고서나 백서를 뚝딱 만들어 내는 데 그쳤고 후속 조치에 대한 지속적인 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사고 조사 보고서’는 불가 한달 만에 나왔다. 스웨덴이 1994년 8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고 이후 3년 만에 선박 설계 개선 방안까지 담은 꼼꼼한 보고서를 낸 것과는 대조된다. 이런 부실한 조사와 후속 조치 방기가 결국 이번 참사의 한 원인이 된 만큼 정부에 진상 조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와 정부의 공동 진상 규명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는 특별법을 만들어 실종자 가족 등 시민, 부패ㆍ규제ㆍ안전 관련 분야 시민단체, 재난 전문가, 국회,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국민참여형 국가위원회’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지위 고하를 막론한 성역 없는 조사 ▦공익신고자 보호 ▦사고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렇게 나온 진상규명 결과를 토대로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과 법률 개정은 물론 여객선 승무원 윤리 강령까지 바꿀 수 있도록 법적 구속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