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백혈병 피해 근로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합당한 보상도 약속했다. 이로써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근로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뒤 7년을 끌어온 논란은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삼성전자 CEO인 권오현 부회장은 14일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다. 삼성전자가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직원의 노고와 헌신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으신 분들이 계셨는데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분들과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저희가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나서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 부회장은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겠다”면서 “직원 가족과 반올림(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 심상정 의원이 제안한 내용도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백혈병 논란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 측에 공식사과 및 제3의 중재기구을 통한 보상안 마련 등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 권 부회장은 보상기준과 대상 등에 대해서도 “피해자 가족 등과 상의 하에 구성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에서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그에 따르겠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사과와 보상 요구를 수용한 건 더 이상 백혈병 이슈를 원칙론만으로 끌고 가기엔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한 재계 관계자는 "백혈병 문제는 산업재해인가 아닌가의 법적, 의학적 차원을 넘어 글로벌 1등 기업의 도덕성 이슈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영실적이 좋아질 수록 삼성전자로선 불리해질 수 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로선 일단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상,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제안을 전향적으로 100%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권 부회장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을 통해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안전 보건 관리 현황에 대해 진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점 ▦현재 피해자와 근로복지공단 사이에 진행중인 산재소송에 삼성전자는 더 이상 간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그렇다고 산재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는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다'고 지적하지만, 어차피 산재여부는 법원판단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인정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첫 단추는 비로소 풀렸지만, 앞으로 협의가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심 의원 제안대로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보상협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반올림측은 직접 교섭을 더 강조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대화는 재개되면 결국은 중재기구 쪽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안에서 산재인정여부와 보상범위, 심지어 협의절차 등을 놓고도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예상보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