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정책의 큰 흐름이 기존의 ‘경제 발전’중심의 외교에서 ‘중국 부상’을 위한 외교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이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정책 실시 이후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경제 발전 중심의 미중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며, 중국이 주장하는 ‘신형대국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미중 관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그간 북중 관계가 미중 관계의 큰 틀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온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중국의 기본 외교정책 변화가 과연 그들의 대북정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가 비핵화와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현재 이 부분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것은 그간의 미중 관계에 비추어본다면 북한은 중국에게 ‘전략적 자산’과 ‘전략적 부담’이 되는 요인들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북한은 냉전 시대 이래 중국의 전통적인 전략적 자산이 되어왔다. 냉전 후 90년대에 걸쳐 냉각기가 있었지만, 90년대 말에 들어와 다시 양자 관계를 회복했다. 하지만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 북한의 연이은 무력 도발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지역 내 안보동맹 강화에 대한 당위성을 높여주었고, 이는 중국의 대미 전략과 안보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한 ‘전략적 부담’이 되었다.
중국이 ‘경제 발전’ 외교를 펼 때에는 북한과 주변국을 다독거리며 안정된 현상 유지 정책을 펼치는 한편, 지역 내에서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을 견제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 부상’ 외교로 중심을 이동하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정치ㆍ외교와 군사ㆍ안보 면에서 견제하는 시기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책을 다시 한 번 심각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해 ‘자산’과 ‘부담’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도 이러한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에서 눈을 돌려 현재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의 전반을 살펴본다면 중국은 다시 한 번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대북 정책을 취하리라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아에서의 미국 주도의 MD 강화,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 논의는 물론, 강화된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미국과 일본이 인도와 아세안(ASEAN) 국가들, 그리고 호주와의 안보협력관계를 강화하며 중국의 주변에서 견제와 압박을 확대해나간다고 인식하고 있다. 단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유럽과 대립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중시하게 된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이렇듯 주변을 둘러 미국과 일본의 견제가 강화된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북한 등 미국과 대립하는 전략적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미일의 견제와 포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한편, 한국, 중앙아시아, ASEAN 국가들이 중립 또는 최소한 급격히 미국에 기울어지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최근 한국 내에서 통일이 화두가 되고, 한중간 신뢰 외교를 바탕으로 중국의 대북정책을 움직여보자는 시각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 발전’ 외교에서는 14개 국가와 영토국경을 마주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고려가 일반적인 주변국 관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부상’ 외교에 중심을 두고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견제를 고려한다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다시금 제고될 것이다. 중국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북한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미국과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나 통일의 기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중국에 ‘전략적 부담’이 되는 부분을 북한에 인식시키고 향후 북한의 행동을 제어해 나가는 데 우선 사용할 것이다. 즉, 북한의 ‘전략적 자산’ 부분을 중시하는 대신, 자신의 지렛대를 통해 ‘전략적 부담’의 부분을 가능한 감소시켜나가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신뢰에 이은 냉정한 전략적 이익 교환이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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