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빈센트 반고흐와 노무현

입력
2014.05.14 11:02
0 0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긴 겨울의 끝을 알리는 개나리와 프리지아, 초등학생 때 길렀던 병아리,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자취를 감춘 코닥 필름 통, 생각만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레몬, 나를 서양 고전음악으로 이끌었던 도이치모 그라모폰의 로고까지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노란색이었다. 내게 노랑은 설렘과 그 설렘을 충족시켜준 행복이었다. 명도가 높아서 가장 먼저 눈에 띄어서, 노랑은 보호(유치원생)와 주의(중앙선)의 대상들을 식별하는 색으로 널리 사용된다. 노란 장미의 꽃말도 질투이다. 내 연인이 나보다 더 눈에 띄는 다른 사람에게로 떠날까 봐 나는 공포와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노란색은 빈센트 반고흐의 것이다. 프랑스 남부의 태양과 해바라기, 고갱을 기다리며 꾸몄던 집, 사랑하는 사람의 초상화 배경 등을 고흐는 모두 노랗게 칠했다. 태양의 노랑과 하늘의 파랑이 캔버스에서 만날 때, 그는 행복했다. 반대로 고갱이 떠나자 그린 의자의 빨강과 초록은, 그의 불행한 심정을 대변한다. 서양 미술사에서 노랑이 고흐의 것이라면, 한국에서 그 색은 정치인이 차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급작스런 서거로 인한 국민장 기간 내내 한국을 뒤덮던 깃발은 노란색이었고, 슬픔과 분노 등이 버무려진 ‘지못미’는 남겨진 자들을 울렸다. 돌이켜보니 눈밝은 국민들에게 사랑 받으며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증오와 질투를 받았던 그의 삶은 노란색과 잘 어울린다. 오는 23일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된다. 그 사이 재임 동안 인기 없었던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햄릿에서 죽어서 살아있는 자들의 현실을 지배하던 선왕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주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가 떠난 후에야 한국 사회는 그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욕망을 선의로 포장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그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정치의 한계와 정치인의 잘못을 극복하려 애썼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자던 노무현에게 선의가 곧 욕망이었다. 하지만 선의만으로 야수의 탐욕이 지배하는 정치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국민의 힘을 믿었으나,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굴복했다. 정치는 대통령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만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났다고 믿었다.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되자”던 그의 바람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쌓아온 단단한 기득권의 벽을 허물지 못한 채 노무현 시대는 미숙하게 끝났다. 탐욕과 부도덕, 무능과 권력남용이 일상화 됐고, 세월호는 침몰했다.

나는 반고흐 인생수업을 쓰는 동안 고흐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 보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한 사람은 구매할 돈이 없었고, 자본가들은 그의 그림을 외면했다. 그림과 생활은 평행선을 그렸고, 그 사이에 끼인 고흐는 가난과 무시로 지쳐갔다. 생활과 예술의 불화도 견디기 버거운데, 자신을 쓸모 없는 광인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노무현도 그랬다.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천민자본주의사회와 원칙과 정의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공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자살 당했다’는 수동태로 말해질 때 비로서 완전해진다. 노란 색을 유달리 좋아했던 그들은 이렇듯 죽음의 모양새까지도 닮아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영혼을 바칠 만한 직업을 찾았고 거기에 전부를 걸었다. 열정이 수난이 되는 시대에는 고흐와 노무현같은 뜨거운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리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만,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은 된다. 거기에 비쳐 본 한국 사회의 현재는 어떤가? 답은 답답한 현실에 가로 막혔고, 나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저무는 노란 태양을 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란 기대를, 그 풍경 앞에서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고흐와 노무현은 행복했다, 는 문장을 쓰고 싶은 오월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