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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없다는 절대 없다

입력
2014.05.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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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나뿐이랴. 상대가 ‘절대’라는 말을 쓰면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서면서 정말 절대? 하며 그 말을 검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어제 술친구가 ‘절대’라는 말을 썼다. ‘절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과 더불어 ‘그 사람의 연기는 절대로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였다. 그는 평소에 낙관적인 사람인데 술이 몇 순배 돌아가니 안색에 심각한 스트레스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말에 대뜸 동의하고 싶지 않아졌다!

삼 년 전에 후배 기획자가 ‘당신의 발상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라며 내가 제안한 건을 단박에 무시한 적이 있었다. 많이 불쾌했다. 절대라는 말까지 넣어가며 과격하게 제안을 묵살할 까닭일랑 없었다. 내가 그 치의 상사였다. 정색을 하니 뻘쭘해져서 금방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 날 이후다. 절대라는 단어에 민감해진 것이. 정말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고 연기는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은 당연히 변하고 연기는 당연히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있다.

원래 나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 한 표다. 그런데 내 말에는 사람은 변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즉 ‘변하는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이다. 생로병사를 겪으며 명멸하는 것이 인간인데 어찌 변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한순간도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대개의 맹세를 불신한다. 별로 의미가 없다. 뭐하러 그런 것을 해서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가. 두 번 사는 삶이라면 또 모르겠다. 사람인데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것이 말이 되나. 만일 변하지 않고 평생을 좋은 관상으로 잘 살았다면 그가 잘 변해와서 한결같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반드시 그는 변화의 흐름을 잘 탔을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나는 사람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연기는 절대로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 이 진술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물리적으로 여러 해 동안 갈고 닦고 집중을 해서 일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일 테니. 그런데 또 보자. 이틀째 저녁에 좋아질까? 십 년 후 밤에? 이십팔 년쯤? 도대체 얼마나 해야 좋아진다는 말인가. ‘절대로’는 의미 없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의미가 없이 고상해 보이기만 하는 진술이다. 연기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게 맞다. 그리고 다음날 또 좋아지고 그 다음 날 또 좋아진다. 체감을 잘못할 뿐이다. 달라지고 깊어지고 성장한다. 그런데 왜 부정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나. 절대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자신의 연기에 대하여 발동이 늦게 걸리는 스타일이라든지, 인물연구를 더 해야겠다 라든지, 대본분석을 더 해야 알겠다는 겸손을 가장한, 나태한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다. 지금이 다다. 연습 중이라면 그 연습이 공연이다. 인물분석이 덜 되고 덜 익어도 상관없다. 오늘 최선의 인물을 찾으면 그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내일은 행복할 것이다’는 말을 끼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희망적인가? 오늘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늘이 중요하다. 긍정하는 지금의 현재가 중요하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으며 연기는 하루아침에도 좋아질 수 있다.”라는 문장을 ‘절대로’라는 단어를 써서 부정문으로 만들어 보라. 참담하지 않은가. 인생이 답답해지고 재미라고는 없어지며 배우로서의 삶도 고단하기만 하지 않은가. ‘내 윗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고 우리 팀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라는 진술은 어떠한가. 부정은 묘하게도 계속 부정을 끌어당긴다. 스스로를 계속 못살게 군다. 표정을 사납게 하고 당장에 삶을 고해로 만든다. 여반장(如反掌)이다. 손바닥을 뒤집어라. 뒤집으면 바로 그 순간 간단히 뒤집어진다. 부디 그게 쉬우냐고 따져 묻지 마시기를. 잘못된 신념으로 스스로를 고통으로 내몰 필요가 ‘절대로’ 없다. 나도, 내 직장도, 나의 조국도 달라질 수 있다. 긍정적인 신념으로 터널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빠져나가면 느낌 좋은 햇볕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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