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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를 갉아먹는 별건 수사

입력
2014.05.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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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압수수색, 별건 수사를 통한 압박, 비리가 드러날 때까지 지속되는 장기간 수사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김 총장은 ‘환부만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수사’, ‘품격 있는 수사’를 역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4년 전으로 거슬러 돌아가 보자.

2009년 9월 29일. 당시의 김준규 검찰총장은 전국검사장회의 석상에서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몰아붙이는 강압수사, 피의자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을 때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압박하는 별건 수사를 금지하겠다”고 했다. 또 ‘의사가 환부를 도려내듯 정교한 수사’, ‘신사다운 수사’를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놀랍지 않은가. 검찰총장이 세 명이 더 바뀌었고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인데 내용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시간을 넘어 계속 문제가 되는 별건 수사라는 것이 무엇일까. 별건 수사란 수사기관이 본건에 대한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 그와는 관련 없는 사안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피의자를 압박해서 본건에 대한 자백을 유도하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일제가 독립군을 잡아들이기 위해 쓰던 수법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흔히 행해지는 관행이다. 뇌물죄와 같이 은밀히 행해지는 범죄는 증거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에 뇌물죄 대신 탈세나 횡령, 배임과 같이 증거를 찾기 쉬운 혐의로 압박하는 식이다.

일제의 잔재라는 별건 수사가 왜 지금도 계속되는 것일까. 자백도 하지 않고 증거도 찾기 힘든 사건에서 피의자에게 겁만 주어 쉽게 자백을 받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은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쉽게 떨치기 힘든 유혹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검찰총장들이 거듭하여 다짐해도 개선되기 어려울 만큼 고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별건도 범죄라면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 그러나 별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본건의 수사에 이용하기 위해 별건 수사를 하는 것은 헌법상 적법절차원리, 영장주의원칙에 반하고 공권력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형사소송법 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형사소송제도는 실체진실의 발견과 적법절차원리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이므로, 아무리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목적이 정당해도 그 수단이 공권력을 남용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11일 검찰은 유우성씨를 외국환거래법 혐의에 대해 다시 기소했다고 밝힌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공권력 남용이다. 검찰은 유씨가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에 1,600여 차례에 걸쳐 26억원을 불법송금했다는 것인데, 이 사건은 2010년 3월 검찰 스스로 기소유예 처분했던 사건이다. 탈북자들이 합법적으로는 북한에 송금할 방법이 없다는 점, 유씨가 송금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점을 참작해서 불기소한 것이다.

검찰은 유씨가 송금에 관여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지난달 25일 서울고등법원이 유우성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상고한 검찰이 간첩죄 사건에 활용하기 위해 별건 수사를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유씨 사건의 본질은 그가 간첩인지 여부였고, 국정원과 검찰은 간첩죄 입증을 위해 조작된 증거를 제출하는 용납되기 어려운 잘못까지 저질렀다. 그런데도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증거조작 과정에 연루된 담당자들을 엄히 문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고 깊이 반성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다. 그리고 검찰총장이 증거조작 사실을 인정한 마당에 유우성씨에게 사과를 하고 적정한 보상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한 조치였다. 유씨의 무죄가 확정되면 검찰은 국가배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유씨를 재기소한 것은 이만저만 적반하장이 아니다.

절차와 수단을 무시하고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온 국민이 뼈저리게 배우지 않았는가. 검찰은 세월호의 아픔을 별건 수사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장진영 변호사ㆍ서강대 로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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