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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국가의 품격

입력
2014.05.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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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5월이다. 슬프고 먹먹하다. 계절의 여왕은 절망의 전령에 완벽히 압도당했다. ‘혹시’의 희망은 갈수록 ‘역시’의 좌절로 치환될 뿐이다. 고구마 줄기 캐듯 끝없이 밝혀지는 탐욕과 유착은 사뭇 새로울 것도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기막힌 인재지변은 반복된다. 쉬쉬해서 그렇지 곳곳이 시한폭탄이다. 곁에서 터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맞닥뜨려도 방법은 없다. 그저 하늘을 탓하며 나쁜 운을 속상해하는 게 전부다. 안타깝지만 2014년 대한민국의 엄연한 속살이다.

한국은 자랑스러운 나라다. 고리타분한 인용이지만 무(無)에서 유(有), 그것도 상당수준의 발전성과를 이뤄낸 국가다. 적어도 경제력과 그 연관지표는 선진국 반열에 이미 포함된다. 성장이 최대과제인 몇몇 국가에선 한국모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까지 여긴다. ‘한강의 기적’은 그 상징 문구다. 경제보다는 한참 떨어지지만, 정치와 사회 수준도 꽤 좋아졌다는 게 정설이다. 빈틈과 함정이 많아 현재 진행형이지만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흡수, 수용했다. 해외시각에서도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뒷덜미를 잡을 뿐 한국만 보면 꽤 매력적인 성공사례다.

더는 아닐 것 같다. 사라진 2014년의 봄은 이런 성공적인 호평이 판단 미스였음을 확연히 증명해줬다. 어울리지 않는 찬사임이 분명해졌다. 일일이 거론조차 힘든 총체적 부실결합과 대응불능은 한국의 국가품격에 강한 의문부호를 던졌다. 어떤 잣대로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탐욕과 무능의 연결고리는 마치 잘 짜진 한 편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컨트롤타워든 사고현장이든 유발회사든 매한가지다. 품격은 실종됐고 야유는 확대됐다. 덩치와 품격은 동반하는 게 옳다. 아니면 엇박자로 불협화음만 낳을 뿐이다. 그간 우리는 덩치를 중시했지 근육은 방치했다. 거대시스템을 움직일 철학과 정신적 품격제고는 주변 이슈로 전락했다.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품격상실은 국가만의 일일까. 아니다. 국가의 품격을 묻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선행질문이 있다. 국민의 품격이다. 개개인의 우리가 과연 품격을 갖췄는지 자문해보는 게 순서다. 국가품격을 좌우할 제도 시스템은 수많은 하위구조가 얽혀 돌아간다. 그 하위구조에 개개인의 호구지책이 연결되게 마련이다. 국가란 국민의 이음동의어인 셈이다. 품격표류는 모두의 책임이다. 국가 리더가 불만족스럽다고 야단해봐야 누워서 침 뱉기다. 원인제공은 국민에 있다. 저질품격은 실수가 아니며, 우연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야말로 맡은 바 임무와 책임을 다하는지 자문할 일이다. 다음 달이면 선거다. 비상식의 국가 시스템일지언정 선거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법이다.

후진적인 건 국가품격만이 아니다. 개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일자리 현장에도 어느새 저위 품격이 판친다. 오직 이윤추구만 강조되면서 근로 공간의 상생가치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노사의 대결 지향적인 의심과 견제는 관성을 넘어 잘못된 문화로까지 확산된다. 왜 기업을 하는지,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철학은 사라졌다. 편하게 돈 버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니 성가신 원리원칙과 절차준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잘못되면 서로를 탓하는 이기와 낭비적인 소모전만 펼쳐진다. 요컨대 돈, 일을 둘러싼 품격상실이다. 그러니 불편하고 불행한 삶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 수준과 그 품격을 한순간에 보여준 5월의 충격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계속 가야 할 당위론이 더 옳고 시급하다. 시간이 흘렀다고 잊어지면 이것만큼 애절한 일도 없다. 국가 시스템을 바닥부터 바꿔버리겠다는 근원적 개혁자세가 시급하다. 덧대고 벗겨내듯 흉내만 내는 개혁은 지금껏 충분했다. 대가는 값비쌌다. 국가품격을 훼손한 제도 기반과 혐의 대상은 대충이나마 밝혀졌다. 성가시고 복잡하며 짜증스런 일이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그 나물에 그 밥’이란 비난을 듣지 않겠다면 고양이 목을 칠 각오로 방울을 걸어야 한다. 진영논리로 맞설 이유도 여유도 없다. 미필적 고의의 희생양은 누구에게든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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