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조건에 따라 라의 ㉢에 대해 답하는 글을 작성하시오. (800자ㆍ60점)
<조건> <나>에 제시된 ‘정보’와 ‘지식’의 개념적 차이를 고려하시오. <라>의 ㉡을 <다>의 ㉠에서처럼 재구성하여 논지를 강화하시오.
[제시문 나]
정보와 지식은 모두 앎(知)과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상적 수준에서는 같은 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체계’나 ‘구조’, ‘맥락’의 확보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이 두 용어 간에는 현저한 개념적 차이가 있다. 지식은 어떠한 형태로건 체계성이나 구조성을 띤다. 예컨대 어느 학생이 나무에 대해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토양이나 수분, 태양, 식물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체계나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나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은 또한 맥락성을 가진다. 단편적인 지식을 나타내는 개별적인 문장이나 용어의 의미는 전체적인 사건과 현상의 맥락 내에서만 확보될 뿐 아니라,그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파악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령 ‘빛’이란 용어는 물리학적 맥락,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맥락, 그리고 회화 작품과 관련된 예술적 맥락에서 제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체계 혹은 구조,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떠돌아다니는 분절적이고 단편적인 것이 바로 정보이다. 어떤 정보를 그 체계나 구조, 맥락과 더불어 자신의 의식 속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식 체계 속에 통합시킬 때, 그 정보는 비로소 지식으로서의 자격을 갖는다.
정보가 지식으로 질적 상승을 하는 데에는 정확한 회상과 반복적 숙고, 그리고 내면적 성찰을 위한 지속적인 지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바로 언어인데,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음성 언어로는 한계가 있다. 문자 언어가 인류사적으로 빛나는 가치를 가지는 까닭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시문 다]
현대 사회의 한 특징으로 권위의 해체 혹은 추락을 들 수 있다. 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선 작가 혹은 저자의 절대적 권위가 해체되는 것이다. 저자를 뜻하는 ‘author’에 접사가 붙어 만들어진 ‘authority’가 권위 혹은 권력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데서 알 수 있듯이,근대적인 문자 문화에서는 작가 혹은 저자가 상당한 독점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문자로 글을 써서 공적인 소통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소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는 독자인 동시에 글을 쓰는 저자로서 자발적이고도 자유롭게 사회적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저자의 독점적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무수한 저자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과 위인의 어록, 그리고 집단적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이나 격언 등의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한다. 널리 진리나 진실로 인정받는 관념을 비틀고 인터넷 등을 통해 이를 공유하는 일도 여기에 해당된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를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는 없다’로 비트는 것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글쓰기, 그리고 이를 활발하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은, 근대적인 문자 문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는 개방성과 포용성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매력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라]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밀착되면서, 독서 문화의 미래에 대한 묵시론적 예언들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이목은 비관론적 목소리에 더 끌린다.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정보의 공유와 소통은 원활해지지만 저급한 정보도 함께 양산될 것이며, 속도와 효율이라는 미덕에 압도되어 그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시각적인 이미지 기호를 동반하는 멀티미디어의 특성상 문자를 통한 상징적·추상적 사고도 점점 낯설어질 것이다. 이미지는 문자 언어에 내재된 논리와 개념을 앞서기 때문이다. 또 하이퍼텍스트의 속성상 비선형적이고 무질서한 독서 방식으로 인해 꼼꼼한 정보 확인과 추론은 거추장스러워지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와도 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에 존재한다는 것과 실존적 깊이에 대해 주관적 체험을 갖는다는 것은 양립하기 어렵기에,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숙고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버리게 될 것이다. 글 읽기라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고 지혜를 얻는 계기로서의 독서는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요컨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인데, 그저 구슬을 보배로 여기면서 무엇으로 어떻게 구슬을 꿸지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자 문화 시대는 독서를 과연 이렇게 타락시키기만 할까? 그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독서에 임하게 될까?
[예시답안]
제시문(라)는 디지털 매체가 저급한 정보만을 양상하고 빠르고 편리한 정보의 검색이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시각적 이미지로 인해 문자를 통한 추상적 상징적 사고를 어렵게 하며,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무질서한 독서 방식은 체계적인 사고를 통한 추론을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구슬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보배로 꿸 줄 알아도 구슬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인간이 정보를 통해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정보가 없으면 이러한 과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때에 디지털 매체는 많은 정보를 통해 지식 형성과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정보의 공유와 소통, 속도의 효율은 정보를 지식으로 구조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원활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과 쉽게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매체의 많은 정보와 속도의 효율을 통해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또한 디지털 매체는 과학적 지식, 수학적 지식과 같은 추상적인 지식을 이미지화 하여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나서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고 과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를 통한 독서 또한 글을 읽는 독서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지식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손준석ㆍ풀무농업고교 졸업생
[문제분석과 답안 총평]
이 문항은 디지털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제이다. 지금의 디지털 전자 문화 시대에 독서를 타락시키기만 할 것인지와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독서에 임하게 될 것인지를 수험생들에게 화두로 던짐으로써 이에 대해 대안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디지털 전자 문화가 독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작성하는 것이 대학 측의 출제의도에 적합한 답안이다.
먼저 작성할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유의사항인 조건을 살펴 보자. 조건을 통해 답안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제시문 (나)에 제시된 ‘정보’와 ‘지식’의 차이를 고려하여 제시문 (라)의 구슬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변형해서 논지를 강조하는 근거로 작성되어야 한다. 먼저 (나)에 제시된 정보와 지식의 차이는 정보를 ‘체계’, ‘구조’, ‘맥락’의 활용 여부에 따라 그 차이가 있다. 그 체계나 구조, 맥락과 더불어 자신의 의식 속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식 체계 속에 통합시킬 때, 그 정보는 비로소 지식으로서의 자격을 갖는다라는 (나)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다음은 속담의 변형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 중에서 구슬은 ‘정보’를 뜻하는 것이며 ‘보배’는 지식‘을 뜻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를 고려하여 적절히 변형하면 될 것이다.
작성할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첫째, 제시문 (라)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간단하게 요약ㆍ작성해야 한다. (라)에서는 디지털 전자 매체가 독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빠짐없이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부정적 영향으로 지적한 부분에 긍정적으로 대응을 정확하게 작성하면 된다. 이런 내용들을 작성하면 무난하게 합격하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한 마디 더하면 조건 중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다’는 내용을 변형해야 한다. 구슬과 보배가 뜻하는 것이 정보와 지식이라고 할 때 디지털 시대의 전자 문화가 독서 문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을 감안해 적절하게 변형하면 된다. 예를 들어 ‘구슬은 꼭 꿰지 않아도 보배이다’, ‘보배는 꿸 줄 알아도 구슬이 있어야 하는 법’, ‘구슬이 서 말이라 꿸 수 있는 보배도 많은 것’ 등으로 변형할 수 있다.
수험생의 답안을 살펴 보자. 총 3단락으로 구성했다. 1단락에서 (라)에서 디지털 전자문화에서 독서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점을 잘 정리하고 있다. 2단락에서는 조건에 맞춰 속담을 적절히 변형하여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는 근거들로 구성하고 있다. 2단락은 디지털 시대에 전자문화가 독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개하기 위한 서론과 같은 단초로 작용하고 있다. 3단락에서는 2단락의 독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1단락에서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자세하게 작성하고 있다, 답안은 논제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제시문의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여 작성된 것이다. 앞으로의 인간들은 디지털 전자 문화 시대에 맞춰 다양한 정보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선택적 독서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며 정보의 양이 증가하는 만큼 그 속에서 정보의 질을 평가하며 수용할 수 있는 비판적 독서를 할 것이라 볼 수 있다는 점이 답안에 잘 녹아 있다고 언급할 수 있다.
김경석ㆍ종로학원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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