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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윤상현 의원의 '고해와 번복'

입력
2014.05.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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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8일 원내수석부대표 퇴임 회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다. 오래 전부터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살아오던 이에게 윤 의원의 ‘고해’는 체증을 뚫어주는 단방약이었다. 윤 의원은 누구인가. 바로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소모적 논란으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졌을 때 야당을 몰아세우던 새누리당의 저격수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정치인으로는 부담스러울 입장 수정을 하다니, 일순 “여야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을 텐데”라는 걱정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누리당 내에서는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경솔한 얘기”라는 불쾌한 반응이 나왔다. 야당은 “NLL 파동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물타기 하기 위한 정치공작임을 고백한 것”이라며 공세를 가했다. 언론에서도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까지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법적, 정치적 책임론이 제기됐다. 타당한 지적이었다. 그 어느 나라도 한 적이 없는 정상회담의 내밀한 대화 공개까지 하면서 정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한 것은 지극히 반이성적, 반국익적 행태였다. 기자도 NLL 공방이 치열했던 지난해, 본보 칼럼 ‘눈 감은 자들의 나라’(11월 15일자 메아리)를 통해 “대화록을 보면서 노무현 화법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NLL을 팔아먹으려 했다는 식의 해석은 난독증(亂讀症)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런 논리적,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감정적으로 좋은 느낌을 가졌던 것은 그가 ‘진실’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외눈박이 나라에서 정파나 개인의 이해를 떠나 뒤늦게나마 ‘사실’을 밝히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신원(伸寃)이라는 작은 차원이 아니라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의 교정을 위해 몸을 던졌구나 하는 감상적 편린도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지나자, 글로도 쓰지 않고 말로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 속에만 있었던 ‘윤상현 예찬’은 초라해지고 말았다. 윤 의원이 페이스북에 “입장 변화가 없다”고 ‘NLL 고해’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언론이, 정치권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확대해 보려는 미스퍼셉션(Misperception)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퇴임 소회 발언의 핵심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윤 의원의 회견 내용을 구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말대로 국정원 댓글 공작에 대해 가장 많은 언급이 있었다. “국가정책과 국내 정치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북심리전을 하다가 이런 일(댓글 사건)이 벌어졌다” “정교하지 못한 대북심리전을 했지만, 이를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대목도 있었다.

그러나 NLL에 대해선 분명히 고해가 있었다. 골자만 추려보면 이렇다. “노 전 대통령이 포기 말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네 번이나 포기라는 단어를 쓰면서 포기로 유도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세게 반박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NLL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통수권자가 어떻게 영토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뛰어넘고 남포 조선협력단지, 한강 허브에 이르는 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윤 의원은 이를 부인했다. 그 순간, ‘역사와 진실’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상대를 꺾기 위해서라면 사슴을 말(馬)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정파주의가 다시 자리하고, 이성적 사회를 갈망하는 많은 이들의 가슴엔 내려가지 않는 체증이 다시 생겼다. 희망이나 기대나 주지 말든지. 드러나지 않은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못할 바 아니지만,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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