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류업체의

패밀리세일. 임직원이나 일부 우량고객들만 따로 불러 싸게 판매하는 행사다.
태어나자 마자 A백화점 B백화점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옷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자태를 뽐내며 팔리기만을 기다렸건만, 주인을 만나지 못해 결국 '재고의류'란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만났다. 과연 여기서도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소멸에서 재탄생까지
계절마다 새롭게 나오는‘신상’은 보통 소비자들과 만나기 6개월 전부터 제작된다. 그리고 백화점 등에 길게는 5~6개월 가량 진열되는데, 만약 여기서도 선택 받지 못하면 1년을 기다렸다가 다음 해 같은 계절에 아울렛과 상설할인매장으로 향한다. 이 때 가격은 정가에서 40~50%가량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할인매장으로 가기 전, 패밀리세일 형태로 의류업체 본사나 외부 전시장 등에서 팔리기도 한다.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관계자는 “패밀리세일은 한 시즌이 마감된 이후 물류센터로 가기 전에 많이 하는 편”이라며 “할인 폭은 50%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곳을 거치고도 팔리지 않은 재고는 결국 3년 차부터 소각된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소각되는 제품가액은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른다.
신기한 건 고가 브랜드일수록 재고를 소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오래된 재고의류가 ‘땡처리’식으로 헐값에 유통되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중저가 브랜드나, 아예 브랜드가 붙지 않은 의류의 재고는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복 베스띠벨리 등을 생산하고 있는 패션기업 신원의 한 관계자는 “고가 제품이 아닌 경우 국내 상설 할인매장에서 90%가량이 소진되지만 그렇게 하고도 남은 재고는 중국 동남아 등으로 수출된다”고 말했다.
물론 어려운 이웃의 품으로 갈 때도 있다. 남성복 인디안, 여성복 올리비아로렌 등을 보유하고 있는 세정그룹은 4년 이상 된 재고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골라 사회ㆍ종교단체에 기부한다. 40%가량은 기부하고 나머지는 중국, 남미 등지에 수출(40%)하거나 소각(20%)한다.
기적적으로 새 생명을 얻는 재고도 있다. FnC코오롱은 소비자들로부터 선택 받지 못한 옷들을 일일이 해체해, 새로운 옷을 만들고 있다. 장애인단체 등과 손잡고 재고 옷들을 소매 다리 몸통 단추 등으로 모두 해체한 다음, 다시 붙이고 꿰매어 새 옷을 만드는 것. 2012년 출시한‘래;코드’는 바로 이런 옷들을 모아 만든 브랜드다. FnC코오롱 관계자는 “브랜드 관리를 위해 소각하는 제품이 연간 40억 원에 이르는데 쓸 만 한데도 아깝게 버려지는 옷들이 많다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살아난 재고의류는 또 다른 '신상'이 된다. 신세계백화점이 직매입한 해외 고급 청바지 재고와 FnC코오롱의 의류 재고가 만나 새 생명을 얻은 원피스는 35만원에 절찬리 판매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청바지 뒷주머니로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인데, 판매 일주일 만에 준비물량의 절반 가량이 판매됐다”고 전했다.
우후죽순 아울렛, ‘재고 모시기’ 전쟁 예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재고의류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일 경우, 질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재고의류만을 겨냥하는 실속파 쇼핑족들도 늘고 있다.
우선 주목할 곳은 아울렛이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유통업계 ‘빅3’는 경쟁적으로 아울렛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롯데백화점은 2008년 광주 월드컵점을 시작으로 현재 총 10개의 아울렛을 열었고, 올해 고양터미널점(6월), 광명점(12월), 구리점(12월) 등 도심형 아울렛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신세계 역시 2007년 경기도 여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시작으로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2011년),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2013년)을 잇달아 열고 계속해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뒤늦게 이 사업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은 최근 서울 구로구 가산동에 1호 아울렛을 개점했고, 가든파이브점, 김포점, 송도점 개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때문에 서로 인기 디자인, 많이 나가는 치수 등 이른바 ‘좋은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아울렛 간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흙 속에서 진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작정 아울렛을 갔다가는 넓디 넓은 매장에서 방황만 하다 돌아오기 십상이다. 아울렛 쇼핑에도 몇 가지 중요한 팁이 있는데, 우선 발 빠른 ‘득템’을 위해선 특정 시기를 눈 여겨 봐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봄ㆍ여름 상품은 3월에 가장 많이 들어오고, 가을ㆍ겨울 상품은 9월에 많이 풀린다. 특히 재고 가운데서도 가장 손 떼가 덜 묻은 1년 차 재고의류들이 이 때 대거 들어온다. 아예 아울렛 전용으로 나온 기획상품도 있는데, 이런 의류들은 6월과 12월에 물량이 많다.
많은 물량보다 싼 가격을 원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아울렛도 자체적으로 세일행사를 벌이는데 신세계사이먼 관계자는 “봄ㆍ여름 상품은 7~8월, 가을ㆍ겨울 상품은 1~2월에 브랜드에 따라 최고 80~90%까지 할인해준다”고 말했다. 롯데아울렛 관계자는 “4월과 10월에 브랜드별로 추가 할인이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할인 폭이 큰 것은 그만큼 오래된 상품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구매 시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상설할인매장의 경우 간판만 보고는 1년 차 제품을 파는 지, 2년 차 제품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할인율을 보고 옷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보통 1년 차 제품은 40~50%, 2년 차 제품은 60% 이상 할인해 판매한다. 옷 라벨에 적힌 제조연월일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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