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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원할 뿐… 정치적 오해 살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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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원할 뿐… 정치적 오해 살까 걱정"

입력
2014.05.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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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3시10분쯤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인간띠 잇기 행사 도중 분향소 출구 쪽에 있던 40대 남성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박근혜 퇴진!” 그는 주변에서 박수 치며 호응한 30대 남성 둘과 함께 같은 구호를 두 번 더 반복했다. 유가족들이 와서 “우리가 바라는 건 진상규명이지 정권 퇴진이 아니다”라고 저지한 후에야 그들은 잠잠해졌다.

앞서 9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과 KBS 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일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길환영 KBS 사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한 보도국장의 사표는 바로 수리하겠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자 모자를 눌러 쓴 한 남성이 “사표수리 갖고 되겠냐, 파면해야 한다”고 외쳤다. 희생자 가족들이 “깽판 내러 왔냐” “유가족도 아니면서 자꾸 이상한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꾸짖자 유가족 명찰을 달지 않은 그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세월호 참사 촛불문화제와 추모 행사에서 나타난 정권퇴진 등 정치적 구호에 대해 유가족들이 우려하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뜻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서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명찰을 제작한데 이어 정치구호가 있는 문화제에는 참석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3주가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요구는 한결 같다. ▦정확한 사고경위 파악 및 진상규명 ▦책임자 문책 ▦세월호 관련 특별법 제정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안전대책 마련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 등이다. 부실한 초동조치 등 세월호 사고 대처과정에서 나타난 의혹에 대해 명확히 밝혀주길 바라는 기대가 특히 크다. 유가족들이 이달 5일부터 분향소 출구 옆에서 서명운동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희생자 박모군의 어머니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속 시원한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며 “퇴진 대신 대통령이 나라의 수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 김모씨도 “정부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먼저 간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우리를 두번 세번 죽이는 행위”라며 선을 그었다.

유가족이나 행사 주최자의 진보정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으며 정치색을 씌우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일부 언론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대책위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모씨의 정의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으며 유가족들의 요구를 반정부 행위로 매도하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자식을 잃은 슬픔마저 색깔론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보면서 치가 떨렸다”고 말했다.

유가족들 내부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커지자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추모공원 건립, 진상규명 요구 외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방안이 논의됐다. 김병권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유가족들은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 구호로 인해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진위가 묻힐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안산=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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