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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과 단절

입력
2014.05.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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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들 한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시간을 지켜보고 있든지 아니든지, 시간은 세상만사와는 상관없이 한 방향에서 와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한 번 흐른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진리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연속성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른 것이 아닐뿐더러 서로 연결돼있다. 시간을 잘게 나눠도 시간의 ‘분자’나 ‘원자’따위는 없다. 다만 인간의 필요로 식사 시간, 근무 시간, 취침 시간 등으로 나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흐르는 시간이라는 강을 강변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고, 작년과 올해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시간의 연속성에 불연속성을 느낄 때가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폭포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어느 날 잠에서 깨었는데 세상이 갑자기 바뀐 느낌과 함께,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니, 실제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 들이닥친 금융위기가 그랬다. 금융위기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켰다. 그전까지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던 거시경제라는 것이 개인의 일상생활, 아니 내 가족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 금리, 환율, 주가 등 전문용어들이 날씨나 몸무게, 혈압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국민의 의식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이다. 경제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됐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참사는 12년 전 금융위기보다 더 큰 시간의 불연속성을 가져온 것 같다.

우리나라 세월호 참사와 비견할 만큼 미국인에게 의식의 변화를 강요한 사건은 9ㆍ11사건이다. 필자도 생전 처음 뉴욕을 갔을 때 세계무역센터(WTC)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뉴욕을, 아니 세상을 내려다보았었다. 시간의 기준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라면, 세계 경제의 기준은 바로 이곳이었다. 기준점과 함께 3,000명 가까운 일반인과 400여명의 구조대원들이 순식간에 희생된 이 테러로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정도를 넘어, 그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일시적인 분노와 슬픔 뒤에는,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평화와 안보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실천하게 됐다.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들이 필요시 한 목소리, 한 행동으로 단결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섬뜩할 때도 있다. 필자 역시 인간의 이성이 야만성을 통제할 수 있고, 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운영하면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지속적인 사회발전은 당연한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적 세계관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겨울에 WTC가 있던 자리, ‘그라운드 제로’라고 불리는 그곳을 방문했다. 쌍둥이 건물이 있던 자리에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관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고 해서 전날 인터넷으로 예약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고층건물들이 만든 계곡과 협곡을 휘감고 내려치는 눈바람을 맞으며 수백 미터의 방문객 라인과 몇 단계의 보안 절차를 거쳐 도달한 그라운드 제로에는 웅장한 기념탑이나 건축물, 조각상은 없고 건물이 놓였던 밑바닥까지 뻥 뚫린 직육면체 공간과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줄기, 그리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돌에 새긴 희생자들의 이름이 전부였다. 텅 빈 공간에는 사건 당일의 슬픔과 분노보다는 반성과 뉘우침, 그리고 명상과 자기 성찰이 있었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란 동양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기념관 옆에는 새로운 세계무역센터가 세워졌다. 건물 내부, 외부 최고의 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미국인들에게는 미래의 표현이자 상징이다.

이 칼럼을 맡은 이래 과학과 예술이라는 이질적인 주제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항상 고민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약간은 무리하게 논리를 전개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과학기술은 치료를, 예술은 치유를 해준다. 그리고 과학과 예술은 단절된 시간을 연결하면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한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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