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2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세월호 참사와 미국 9ㆍ11 테러를 비교해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면 미국은 단결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에 따르면, 박 처장은 또 “9ㆍ11 테러가 났을 때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56%에서 90%까지 올랐다”며 “갈등과 분열이 국가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다. 무엇보다 비교 대상으로 9ㆍ11 테러를 거론한 것부터 좁은 식견을 드러낸다. 9ㆍ11 테러는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들을 계획적으로 납치, 뉴욕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 폭파시킨 범죄였다. 미국민 눈에는 사실상 외적이 침략한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반면 세월호 참사는 적의 테러나 공격도 아니고, 자연재해도 아니다. 정부 위기관리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낸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다. 배가 기울어 침몰하는데도 정부는 신속하고 체계적 대응을 해내지 못해 수많은 학생들이 바다 속에 묻히는 광경을 국민들이 TV로 지켜보았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9ㆍ11 테러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면서 정부의 무능과 혼선을 비판하는 국민을 ‘분열주의자’로 비난할 수 있는지, 그 무모함이 놀랍다.
한편으로 박 처장 스스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려 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역효과만 냈다. 박 처장의 강연 사흘 전에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직접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박 처장이 거꾸로 국민을 힐난하고 나섰으니,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더욱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박 처장은 지난해 대선 때 지나친 우편향 안보교육으로 대선 개입 논란을 부르는 등 이번 발언에 앞서서도 여러 차례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앞으로 이루어질 정부의 인적 쇄신에서는 마땅히 국가보훈처장에게도 평균 이상의 품격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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