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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잃어버린 19년

입력
2014.05.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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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잇달아 겪는 이 재앙들이 무슨 벌이고 보복인지 자문하게 된다. 그렇다. 모래성을 쌓아놓고 그것이 기적의 성이라고 자랑한 벌,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이 무슨 문제냐고 서로 부추긴 탈법ㆍ편법의 보복을 우리는 지금 받고 있다. 오늘 이 나라가 ‘사고 공화국’이 된 뿌리에는 우리 모두의 탈법문화, 황금숭배, 적당주의가 얽혀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울면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오늘,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두려운 오늘, 정부도 국민도 원리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부터 19년 전 1995년 7월 1일(토요일)자 한국일보 ‘장명수 칼럼’의 일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6월29일 토요일 오후 5시57분)’가 떠올랐고, 당시 한국일보 신문철을 훑어보다 칼럼이 눈에 띄었다. 그러더니 어제 한국일보 1면 톱기사로 올라온 우물에서 하늘보기가 마음에 박혔다.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다는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의 기사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튿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비통한 심정”이라며 “생존자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이튿날 한국일보는 매몰자 아직도 250여명이라고 확인하면서 지면 대부분을 사건에 할애했다. 재난 구조체계까지 엉망진창, 지침 없이 우왕좌왕 시간 허비, 전문가 의견 안 듣고 주먹구구라는 제목으로 정부의 구조 상황을 질타했다. 백화점의)시공도 관리도 죽음의 부실공사, “돈 더 벌자”며 지하층 변칙 증ㆍ개축으로 업주의 책임을 따졌다. “죽지만 말라” 목숨 걸고 전진, 칠흑 속 랜턴 불에 의지 잔해더미 헤쳐, “재 붕괴” 경고에도 “작업 중단은 안 된다” 자원시민 구조대원 앞다퉈 현장에라며 구조 상황을 전달했다.

당시 외국 언론의 반응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졸속과 부실이 빚은 또 하나의 인재(人災)”, 일본은 “질(質)보다 양(量)에 치중한 고도성장의 병폐”, 독일은 “안전의식 결여, 눈가림 처벌의 대가”라고 논평했다.

대형 백화점 붕괴의 원인이 밝혀졌다. 살인보다 더한 ‘악덕 상혼(商魂)’이란 제목 아래 ‘삼풍 중역들 (붕괴 직전에)대책회의 후 자기들만 탈출, 일반 직원은 100여명 실종’이란 내용이 이어졌다. 여론을 의식한 검찰은 삼풍백화점 회장 등 4명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서둘러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했다. 법조계는 “부실방지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외쳤고, 법무장관은 “안전사고 책임자에게는 무기징역까지 처벌토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야권의 내각 총사퇴 주장을 청와대가 수용했고, 여당은 앞장서서 국정조사에 동참했다.

요즈음 얘기인지, 거의 한 세대가 지나간 19년 전의 얘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차이점이라면 삼풍백화점 붕괴는 사상 처음 지방선거가 실시(6월 27일)된 지 이틀 후의 일이었고, 세월호 참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였음에도 삼풍백화점 붕괴의 수습과 처리가 그 정도였다. 지금은 정부 여당의 힘과 지지도가 한창 올라와 있었던 상황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정부가 약속했던 것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대형건물에 대한 안전평가가 실시되고 있고, 119중앙구조대가 체계적으로 운행되고 있다는 정도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없었던 일이 됐다.

19년 전 그 때 한국일보는 국가 존재의 요건이란 사설을 썼다. “안전사고 예방 및 대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정부의 결연한 다짐이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국민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형 재난의 예방과 대처는 국가의 최우선적 공공사업이다. 이 사업이 제대로 수행돼야 국민은 국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민은 선원만 탈출한 폭풍우 속의 난파선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승객의 처지가 된다.” 새삼 섬찟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이고, 그래서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다는 글이 더욱 가슴에 와서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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