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인디 밴드’는 이제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요즘은 인디 대신 로컬이란 말도 종종 쓰지만 홍대 앞 음악가들은 인디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인디라는 단어는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사람은 인디라는 단어를 ‘아직 성공하지 못한(않은)’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진정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라고 이해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마추어적인 음악’으로 이해할지 모르고 또 누군가는 ‘외국 록을 촌스럽게 따라 한 음악’으로 여길지 모른다. ‘인디는 마케팅 용어일 뿐’이라는 견해를 가질 수 있고 ‘독립 자본이 아니면 인디가 아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중 어느 것이 진짜 인디인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인디라는 개념이 굉장히 다양하게 의미화한다는 것을 짚어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의미 부여에 있어 우리는 인디 음악가를 한국 국적의 멤버로 국한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아이돌 멤버가 다중국적을 갖는 것은 비교적 당연하게 여기지만 인디 음악가는 한국 국적의 음악가인 걸 당연히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엔 다양한 인종과 국적자들이 홍대 앞에서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밴드도 있고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밴드도 있다. 외국인이 나서 공연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경우가 있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음악가가 데뷔하기도 한다. 글렌체크, 빅포니, 수리수리마하수리, 웨이스티드 쟈니스, 모노반 등이 그런 밴드의 일부고 슈퍼칼라슈퍼 같은 공연 기획사와 코리안 인디, 두 인디 같은 사이트의 구성원도 그렇다. 이들은 해외 인디 밴드를 한국에 소개하거나 한국의 인디 밴드를 영어로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문제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단 중요한 건 홍대 앞에서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하는 외국인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홍대 앞에 외국인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이태원에서 미군 관련 범죄가 늘고 그로 인해 미국 헌병대와 한국 경찰이 이태원을 수시로 순찰하던 때였다. 월드컵을 앞두고 관광 상품 개발에 고민하던 서울시가 이태원에서 정화사업을 하자 그곳의 외국인들이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피해 홍대 앞으로 이동했다. 월드컵 기간 중 발생한 미군 장갑차 사고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과 맞물리며 반미감정이 극대화하기도 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외국인들은 홍대 앞에 빨리 적응해갔다. 그 즈음부터 홍대 앞이 글로벌 장소가 됐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어떤 외국인은 한국인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 이건 멤버의 국적이 다양해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외국인 멤버는 대개 타악기나 베이스 같은 리듬 악기를 연주한다. 기타나 보컬은 거의 한국인이다. 이국의 멤버가 참여한 밴드는 전에 보지 못한 악기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다른 체계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한국은 이미 다인종 사회로 진입했고 서울 그 중에서도 홍대 앞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장소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홍대 앞 한국 인디는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 같다. 문화적으로 서울의 홍대 앞은 뉴욕의 브루클린이나 파리의 샤틀레ㆍ레알 지구,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와 얼마나 가까울까. 그 거리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홍대 앞을 제대로 보는 또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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