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를 장악하면 국가를 통제할 수 있고, 식량을 장악하면 시민을 통제할 수 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당시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 같이 말했다. 배럴 당 2달러 59센트 하던 원유가가 1년 사이 11달러 65센트로 4배 이상 치솟았고, 국제 곡물가격도 폭등하던 때다. 이 때문에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했다.
유엔은 1974년 로마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WFO) 주제로 세계식량회의를 열고, 식량자원 공급에 관한 국제 공조에 합의했다. 키신저 장관은 이 회의에서 “10년 내에 전세계 어떤 아이도 줄인 배를 잡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는 1970년대 식량에 대한 통제권을 더욱 강화하는 데 모든 정책의 초점을 맞췄고, 카킬ㆍ콘티넨탈 등 민간 곡물메이저 기업을 앞세워 세계 식량 시장을 독점해갔다. 이후 이들을 뒷받침 한 것이 몬산토를 비롯한 미국계 종자회사다.
종자전쟁 절대강자, 미국
총성 없는 세계 종자전쟁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 ETC그룹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몬산토와 듀퐁, 랜드오레이크, 다우 아그로사이언스 등 미국계 종자기업이 세계 종자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4개 기업이 종자를 팔아 얻은 수익은 125억7,311만 달러(약 13조 원)에 달한다. 특히 몬산토는 1990년대 유전자조작종자(GM)를 판매하면서 세계 종자시장의 23%를 장악한 1위 종자기업으로 발돋움 했다.
1901년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을 만들어 당시 신흥기업이던 코카콜라에 전량 납품하는 사업으로 출발했던 몬산토가 종자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1980년대다. 몬산토는 1982년 세계 최초로 식물세포의 유전자 변형에 성공했고, 이후 GM종자 개발에 집중했다. 몬산토의 대표적 전략은 자사 제초제와 그것에 내성을 가지는 GM종자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것인데, 몬산토의 세계 GM종자시장 점유율은 8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전세계적으로 유전자변형식품(GMO) 의 유해성 비판이 거세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프랑켄푸드’라는 악명이 붙은 GMO 생산이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하는 콩의 97%가 몬산토 종자일 정도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10대 메이저 과점 강화
세계 종자시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수요 증가,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생산 불안정, 농산물을 활용한 바이오연료 개발 등으로 시장 규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몬산토를 비롯한 듀퐁, 랜드오레이크, 다우아그로사이언스 등 미국계 종자기업과 신젠타(스위스), 리마그레인그룹(프랑스), KWS AGㆍ바이엘 크롭사이언스(독일), 사카타(일본), DLF-트리풀리움(덴마크) 등 세계 10대 종자기업의 독과점도 강화되는 추세다. 이들 기업의 세계 종자시장 점유율은 1996년 14%에서 2004년 49%, 2009년 74%로 급격히 늘고 있다.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이들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갔고 있다는 점이다. 몬산토는 미국 제약회사 파마시아가, 신젠타는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각각 대주주로 있다. 생명공학 기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글로벌 제약업체가 종자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은 종자산업이 고부가가치 지식집약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지난 2002년 미국 시사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발명품’ 중 의료분야 최고 발명품으로 설사 치료제로 쓸 수 있는 토마토 종자가 선정될 정도로 종자산업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스타아니스(팔각나무) 종자에서 성분을 추출한 신약이다. 이 밖에도 엉겅퀴에서는 간기능 개선제, 은행잎에서는 혈액순환 개선제를 만들고 있다.
세계 각국 종자주권 강화 나서
미 농학자 노먼 블로그는 1944년 생산성이 4배 이상 높은 다수확 밀 종자 ‘소로나’를 개발, 멕시코ㆍ파키스탄ㆍ인도 등에 종자를 제공했다. 블로그는 1970년 개발도상국 식량위기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 토종 ‘앉은뱅이 밀’ 종자를 다른 밀 종자와 교잡해 소로나를 만들었는데, “앉은뱅이 밀 종자 하나가 1억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약 26만점의 종자자원을 보유한 세계 6위 종자자원 대국이지만 과거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탓에 토종 종자가 해외로 유출된 후 역수입하는 역설적 상황이게 된 하나의 예다.
메이저 종자기업들은 최근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후변화 등 환경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내재해성’ 종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유전자원 보유국들은 최근 글로벌 종자기업의 이러한 개발행위에 대해 반발해 유전자원의 주권 및 권리화를 주장하고 있다. 박현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종자산업의 도략을 위한 발전전략’ 연구보고서에서 “이 내재해성 종자는 기술개발의 산물이 아니라 내재해성 유전자를 탐색 발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특허나 품종보호권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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