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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주권 수호하라" 세계 다국적기업에 맞서 '골든 시드' 찾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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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주권 수호하라" 세계 다국적기업에 맞서 '골든 시드' 찾기 싸움

입력
2014.05.0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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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자랐어도 뿌리는 외국산인 농산물이 많다. 외국 기업이 개발한 품종의 농산물이다. 원산지 표시는 국산이지만 씨앗값은 외국 기업이 챙긴다. 꺾꽂이해 키웠더라도 묘목마다 로열티를 내야 한다.

종자값은 품종마다 천차만별인데 씨앗값이 전체 농사 비용의 2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 농가의 효자 수출품목인 파프리카는 색이 고와 해외에서 인기가 높지만 종자는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수입한다. 파프리카 종자의 국내 가격은 1립(粒)에 600원 수준. 200립 무게가 1g이니 g당 가격이 금 값을 훌쩍 넘는다. 국산 종자가 하나 둘 수입품을 대체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세계화 시대이니 종자도 얼마든지 수입하면 된다고 편히 마음먹기엔 무역적자가 너무 크다. 한국은 지난해 보리와 밀 같은 식량작물과 채소, 사료 종자 18종을 1,206톤 수출해 4,123만달러(453억원)를 벌었다. 그리고 31종 2만6,540톤을 수입했다. 무역적자는 9,071만달러(997억원)에 달한다.

세계는 이미 종자전쟁에 돌입했다. 국가마다 종자주권을 지키고 인구증가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우수 종자를 한발 먼저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상업용 종자시장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늘었고 2011년 450억 달러(49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종자 교역액도 3배 늘어 2011년 100억달러(11조원)를 기록했는데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독일 4개 농업선진국이 교역액의 52.4%를 차지했다. 기업별로 따지면 상위 10대 기업이 전세계 종자시장 74%를 과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 종자기업이 종자산업 진출에 열을 올리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경쟁에 뒤쳐졌다. 다행히 몇몇 우량 기업이 채소종자를 발판으로 살아남았고 정부도 품종 개발을 이어갔다. 그 결과 벼와 고추 등 채소 육종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반면 양파, 토마토 등 세계적으로 팔리는 작물의 육종기술은 수준이 낮다. 종자 자급률은 2012년 기준 벼 등 식량작물은 거의 100%이고 채소도 높지만 과수, 화훼는 각각 23%, 10%에 불과하다. 파(0%), 양파(15%), 포도(0.8%), 사과(20%), 토마토(16%) 등 인기품목 종자는 대부분 수입한다. 시장 규모도 2011년 기준 4억~7억달러(약 4,400억~7,700억원)로 세계 시장 규모의 1% 크기에 그쳤다.

매년 발생하는 무역적자 역시 사료ㆍ화훼ㆍ과수작물 종자 중 대부분을 수입하는 탓에 생겼다. 식량작물은 정부가 종자 공급을 책임지는 벼와 국내에서 종자를 생산하는 감자, 콩을 제외하면 밀 종류와 조, 수수, 귀리는 대부분 수입산 종자에 의존한다. 사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국내 기업이 경쟁력 있는 채소는 종자 종류가 다양해 수입량과 수출량 모두 많다.

요즘엔 사용료까지 낸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협약에 따라 정부가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범위가 2012년 1월부터 모든 작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종자값을 뺀 사용료만 앞으로 10년 동안 2,900억원에 달한다고 전망했다.

종자주권 수호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간 기업은 개발에 나서기엔 영세한 탓이다. 지난해 정부가 한국종자협회 회원사 21곳을 조사한 결과 2012년 매출이 100억원을 넘은 업체는 7개에 그쳤다. 국내 종자기업 중 코스닥 상장사는 1곳뿐이며 나머지는 외국투자법인 4곳과 800여개 중소·개인기업이다. 거대 종자기업 몬산토의 경우 연구개발 투자액만 해도 국내 전체 종자시장 규모의 1.7배에 달한다.

종자업체 관계자는 “채소는 매년 팔려서 수익성이 있는데 과수는 한 번 심으면 10년씩 안 팔리니 민간 업체가 개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우수한 국산 종자를 내놔도 농민이 검증 안 된 신제품 선택을 꺼리는 어려움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식물신품종보호법’을 시행해 종자 특허 보호를 강화했고 수출 종자를 개발하고 수입 종자를 대체할 목적으로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2021년까지 4,911억원을 들여 수출 종자 20개를 개발하고 종자 수출액을 2억달러(2,042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성과도 나왔다. 김밥용 부드러운 김의 경우 종자 과거 대부분 일본산이었지만, 이젠 일본 종자로 만든 김이 전체 생산량의 12~13%에 불과했다. 국산 종자가 2012년부터 일본 종자를 대체해왔기 때문이다. 딸기도 종자 자급률이 불과 5년 만에 35%에서 74.5%로 뛰었다. 국산 종자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종자주권 수호의 가장 큰 적은 막강한 다국적 기업보다 “우리가 거대 기업을 이길 수 있겠냐”는 자조 섞인 한탄일지 모른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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