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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길 위의 이야기/집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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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길 위의 이야기/집과 여행

입력
2014.05.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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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은 값비싼 저택도 아니고 편의시설이 다 갖춰진 최첨단 주거시설도 아니지만, 나는 내가 사는 집이 너무 좋다. 그것은 내가 거쳐온 반지하연립과 좁디좁은 빌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1970년대부터 비스무리하게 지어진, 양옥구조에 기와지붕을 얹은 2층짜리 입식한옥들 중 하나인데, 돌아가신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이런 집을 가리켜 냉소적인 어조로 ‘박조(朴朝)건축’이라고 불렀다는 걸 몇 년 전 건축가 승효상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박조건축’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 양식을 ‘이조건축’이라고 하는 것처럼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부터 새마을 운동의 소산으로 똑같은 형태의 건축물이 전국적으로 지어졌음을 비꼬기 위해서 나온 말이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리다가 농촌 마을을 지나다 보면 창밖으로 비슷한 단독주택들이 일렬로 늘어선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이것들이 모두 박정희 정권 때 지어졌거나, 그때부터 정형화된 양식에 따라 후대에 지어진 주택인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10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충분히 나의 체온과 숨결과 땀과 분비물과 비명을 집 안 곳곳에 발라놓았다. 그리고 집이란 이렇게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여행이란 이런 분리를 감행하는 것인데, 나는 이것이 몹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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