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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에 맞서야 한다

입력
2014.05.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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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주가 넘어서고 있다. 참사 후 근 3주 동안 온 국민들은 단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바랬지만, 그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에 애도하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권 초기에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며 ‘안전’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던 정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채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외친 결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다. 또한, 세월호 침몰 직후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고스란히 놓쳐버리고 책임회피와 책임 전가에 급급하였고, 1년 계약직이던 선장은 선원들과 제 한 몸 살려고 도망가기에 급급하였다. 비겁한 여당은 국민의 관심이 온통 세월호 참사에 가있는 시국을 틈타 철도요금 인상안을 통과시키고, 공적연금 체계를 망가뜨리는 기초연금법안을 의결하였으며, 무기력한 야당은 이에 동조 내지 방임하였다. 잔인한 언론은 선장과 생존자, 유가족들의 사생활 캐기에 열을 올렸고, 부패한 자본은 여전히 수익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하고 인력을 외주화하기에 주력하고 있다.

300여명이 죽어간 참사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관련 기사를 보고 눈물 흘리는 일, 어린 영령들 앞에 분향하는 일밖에 없던 대다수 국민은 도망가려야 도망갈 곳도 없고, 현실을 바꾸려야 바꿀 능력도 없이 무력감을 느낀 채 하루하루 지내왔다. 그 무력감은 절망감으로 바뀌었고, 숱한 전쟁과 참사, 사고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현실에 익숙해져 버린 국민들은 이러한 절망감을 잊기 위해 참사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다.

지난 2월 반지하 방에서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던 송파 세모녀도, 같은 달 경주 리조트 체육관 천장붕괴로 10명이 사망한 사고도, 지난 4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화재로 사망한 고 송국현 씨도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그저 바뀌지 않는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린 각자 무한경쟁의 현실에서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겨울 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건, 사고에도 끄떡하지 않는 정권의 지지율을 보면서 이를 냉소하고 정치에 점점 더 무관심해져 버렸다.

복지시설에서 장기간 거주한 장애인들에게는 소위 ‘시설병’이 있다. 오랜 복지시설에서의 생활은 시설장애인들에게 독립적인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고, 어떠한 ‘꿈’도 꾸지 못하는 무기력과 체념의 습성을 갖도록 한다. 우리 모두가 바뀌지 않는 현실로 인해 변화에 대한 어떠한 꿈도 꾸지 못한 채 무기력과 체념을 습성화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쉽게 체념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조선의 선조와 이승만 전 대통령처럼 도망갈 수도, 도망할 곳도 없는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체념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타인을 외부공간으로 추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무리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더라도 더 이상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뤄낸 저력을,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올라선 저력을 가지고 있다. 기성 정치에 냉소하고 무관심한 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국민의 안전과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이제는 변화하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맞서고 행동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는 일이 없어질 수 있고, 반지하 방에서 가난으로 죽어간 송파 세모녀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며, 활동보조인이 없어 화재를 피하지 못해 죽는 장애인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우린 모두 포기와 체념 그리고 망각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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