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총에서 상장사들이 내년 폐지될‘섀도보팅’을 요청한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선임이나 경영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등 소액주주의 반대가 예상되는 안건을 제도 폐지 이전에 처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3년 12월 결산법인 1,696개사 중 672개사(39.6%)가 올해 주주총회에서 섀도보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전년에 비해 13.7%(81개사)나 늘어난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전체 상장사의 34.1%(246), 코스닥시장에서는 43.7%(426개사)가 섀도보팅을 요청했다. 전년대비 각각 15.5%, 12.7%씩 증가했다.
섀도보팅 의안별 요청 사항을 보면 감사위원 선임안이 전체 의안의 31.9%(586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전년보다 21.6%나 늘어난 것이다. 스톡옵션 관련의안에 대한 요청도 37건으로 전년보다 5배 이상 급증했다.
섀도보팅은 소액주주가 주총에 참가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주총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예탁원이 대신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소액주주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따라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내년 1월 1일 폐지가 결정됐다.
대안으로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도가 이미 2010년 도입됐다. 특히 전자투표제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해 내건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채택한 기업은 페이퍼컴퍼니 6곳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실정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전자투표가 도입되면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어 대주주와 경영진이 기피하고 있지만, 섀도보팅이 폐지되는 내년부터는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채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기웅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팀 부장은 “전자투표를 채택하기보다는 이사회에서 정관변경을 통해 주총 의결정족수를 낮추는 편법을 택하는 상장사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해 기업지배구조를 선진화하려는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 권고사항으로 돼 있는 전자투표를 의무화하는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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