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연계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폴란드와 독일 연극이 잇달아 국내 무대에 오른다. 16, 17일 이틀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은 폴란드를 대표하는 젊은 연출가 얀 클라타(42)의 2011년 작품이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국립 스테리 극장 예술감독에 임명될 정도로 폴란드 연극계의 기대주인 클라타의 이번 작품은 초연 후 러시아, 스위스, 일본 등의 여러 유명 공연장에서 초청을 받은 바 있다.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은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어머니와 전후 세대로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딸의 갈등을 담은 폴란드 작가 보제나 케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역사와 조국의 무게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얹어지는지를 그로테스크하면서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연극으로 오르는 ‘아버지 나라의 여인들’은 의미 있는 대화나 스토리라인 대신 상징을 담은 배우들의 노래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 제의(祭儀)극의 형태를 띤다. 막이 오르면 검은 원피스를 입고 붉은 하이힐을 신은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듯 대사를 읊으며 등장한다. 마치 탯줄처럼 머리카락으로 서로 묶인 이들은 가장 강력한 유대관계인 어머니와 딸을 상징하는 동시에 역사와 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을 뜻한다. 전쟁 경험을 사이에 두고 세대갈등이 치열한 폴란드를 배경으로 했지만 우리 현대사와 닮은 부분이 많아 공감이 어렵지 않다. 이현정 LG아트센터 기획팀장은 “스토리를 알기 쉽게 나열하지 않으며 어머니와 딸의 역할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각자의 존재가 오버랩되기도 한다”며 “연출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혼란을 극적으로 배가시키기 위해 영화 ‘툼레이더’의 여전사 라라 크로포트, 영화 ‘에일리언’의 리플리, ‘반지의 제왕’ 캐릭터 등을 중간중간 삽입했다”고 밝혔다.
유럽 최고의 연극 제작극장인 영국 로열 내셔널 씨어터와 견줄만한 독일 베를린의 도이체스 테아터 극단의 첫 한국 공연 ‘도둑들’도 LG아트센터에서 6월 4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다. 131년의 전통을 지닌 도이체스 테아터 극단과 손잡고 ‘도둑들’을 제작한 극작가 데아 로어와 연출가 안드레아스 크리겐부르크는 현재 독일 연극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일상에서 ‘매 순간 삶을 도둑맞는’ 우리를 형상화한 ‘도둑들’의 무대에는 6.5m 높이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놓인다. 속절없이 돌아가지만 한 자리에 멈춘 채 앞으로 향하지 않는 이 바퀴는 정확히 현대인의 ‘도둑맞은 삶’을 상징한다. 사회 변방에 위치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12명이 바퀴의 날로 1층과 2층으로 구분되는 세트 공간에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일상에서 도려낸 37개 장면에는 공히 현재라는 삶이 없다. 사회적 편견과 소통의 부재가 낳은 어둡고 코믹한 과거의 토막들뿐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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