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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도 도둑이다.

입력
2014.05.0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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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학을 다녔다. 당시 가난한(?) 대학생들은 외국 원서는 당연했고, 국내교재도 학교 앞 복사점에서 무단으로 복사해 사용했다. 교수님들도 비싼 원서를 사라고 말씀하지 않았고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우리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고 했으니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복사해서 교재로 사용하는 우리에겐 죄책감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작권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재산을 무단으로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이고 그것이 전반적인 문화산업을 괴멸시키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 보도에 따르면 국회에 새로운 저작권법이 발의된다고 한다.

새로운 저작권법에 따르면 영화나 음악, 혹은 웹툰이든 소설이든 간에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무단으로 업로드하더라도 6개월간 무단 업로더가 거둔 이익이 100만원 이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안이라고 한다.

난 이 소식을 접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 따르면 그간 무분별한 고소ㆍ고발이 난무해서 선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합의금을 내야 했으니 수익액이 미미한 업로더들은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란다.

이 법안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피해액과 수익액이 등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불법 업로드한 영화들이 현재 인터넷시장에서 100원에서 500원 내외로 거래가 되는데 이 법안대로 처벌을 받으려면 2,000 ~ 1만 번 다운로드가 돼야만 처벌받을 수 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2,000번의 불법다운로드가 되면 정가가 1만원인 영화의 피해액은 2,000만원에 달하며 1만 번이라면 1억원이다. 즉 도둑을 당한 사람이 2,000만원에서 1억원사이의 피해를 보았는데도, 도둑이 헐값에 팔아버려 그 도둑이 거둔 수익이 100만원 이하이면 피해액에 상관없이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난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만약 내가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 집에가서 5,000만원짜리 귀금속을 훔친 후 100만원 이하로 장물아비에게 팔아버리면 난 처벌받지 않는다는 건데 과연 그게 법감정에 맞는 것인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인터넷산업과 환경은 세계 최강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너도나도 영화나 음악, 웹툰 등을 무단으로 복제해서 인터넷에 올린 후 아주 저가로 유통하면 피해액은 수억, 수십억에 달하지만 개별 범죄자들의 이익은 각각 100만원 이하이기에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요즘 관심받고,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로 경쟁적으로 상영 중인 영화나 인기 있는 음악들을 무단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영화나 음악, 웹툰 등을 무단으로 인터넷에 올린 후 돈을 안 받거나 아니면 10원씩만 받고 올릴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건 그들에게 정말 관심받게 그리고 추앙받게 만드는 일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영화 일을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항상 멍이 들어있다. 왜 우리 현실은 무형의 재산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창작자들이 피와 땀으로 만든 영화, 음악, 웹툰, 소설 등에 대해서 무단으로 불법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과 사회가 관대할까? 항상 안타까웠고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한 국회의원이 문화산업을 완전히 괴멸시키고 회생불능으로 만들 법안을 발의해 국회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날로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산업은 조종을 울리고 산업은 괴멸할 것이다. 현재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유통관계자들의 이익에 가려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도 영화를 제작해도 수익이 미미한데 앞으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그 의원님에게 간곡히 말씀드린다. “의원님, 책 도둑도 엄연히 도둑이고 의원님이 발의하신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의원님은 대한민국 모든 창작자를 괴멸시킨 장본인이 되실 겁니다. 2014년도에 의원님은 ‘분서갱유’를 하시는 겁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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