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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인간의 수명을 길게 주지 않은 뜻

입력
2014.05.0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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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백의(白衣)의 문형(文衡)으로 일컬어지는 이용휴(李用休)는 환갑을 맞은 매제에게 축수의 글을 지었다. “수명은 조물주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것을 나무나 바위에게도 길게 주고 물고기나 조개에게도 길게 주면서 유독 인간에게만 함부로 길게 주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나무나 바위는 그저 오래 살기나 할 뿐 하늘이 행사하는 일에 아무런 참견을 하지 않고, 물고기나 조개는 오래 살면 살수록 신령한 힘을 갖는다. 인간은 그와 달라서 나이 들어 혈기가 쇠잔하면 지각이 혼미해지기 일쑤고, 어떤 때는 그 동안 해온 일을 망가뜨리고 그 동안 쌓아온 덕을 손상하기까지 하니 그 때문에 하늘이 수명을 주는 것을 아끼는 것이 아닐까?”

생명이 없는 바위나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수백 년 이상을 지탱하고, 일부의 물고기나 조개처럼 수백 년을 사는 것에 비하면 인간은 백년 수명은 길다고 하기 어렵다. 조물주가 우주의 가장 빼어난 기운을 모아 인간을 창조하였기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하는데, 그런 인간에게 수명을 너무 짧게 준 것이 아닌가! 이를 두고 이용휴는 다소 엉뚱한 답을 내렸다. 나무나 바위는 아무리 오래 있어도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는다. 수백 년 사는 잉어나 거북이는 신령한 힘을 갖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은 오래 살면 지각이 혼미해져서 젊은 시절 잘 해놓은 것까지 다 망가뜨리고 만다. 그래서 조물주가 인간의 수명을 제한하였다는 것이다.

잔치 자리에서 할 말로는 가히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물론 매제가 노망들기 전에 빨리 죽으라고 한 말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 올바른 뜻으로 가지고 큰 성과를 내었지만 노년에 사회와 국가의 어른으로서 처신을 잘못하여 지탄의 대상이 된 인물을 고금에 자주 본다. 이용휴가 이상한 축수(祝壽)의 말을 한 것은 이러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제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조물주가 함부로 주지 않는 장수를 얻는다면 근면하고 성실하게 인격을 닦아 발전을 도모해야 마땅하다. 힘써 일하여 시시각각 나날이 하늘이 준 진귀한 보물인 수명을 헛되이 버리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이용휴의 매제는 감찰의 업무를 맡은 사헌부의 헌납(獻納)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용휴는 “헌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실천한다면, 세상의 풍속을 아름답게 하고 국가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으므로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그러니 그가 하루를 더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하루를 더 사는 것과 비교할 때 여러 갑절 소중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가 얼마나 더 장수를 누릴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맡을 일을 성실하게 하여 세상의 풍속을 아름답게 하고 국가의 수명을 길게 할 때 환갑을 넘긴 노인의 수명도 더욱 길어질 것이라고 하여 축수의 뜻을 밝혔다.

어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큰 욕을 먹고 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고민할 때다. 숙종 연간의 문인 이하곤(李夏坤)은 젊은 시절부터 흰머리가 돋았다. 그래도 10년쯤 지나자 반백의 머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내 모습은 나이와 함께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내가 나의 심신과 언행을 살펴보니 유독 바뀐 것이 없다.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은 그저 외모뿐이요, 바뀌지 않는 것은 마음인가?” 이렇게 반성하였다. 그리고 “내 마음이 바뀔 법한데도 바뀌지 않은 것은 누가 만든 일인가? 나는 이제부터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여야 할 것이다. 너 흰 머리카락이여 앞으로는 더욱 늘어나거라. 아침저녁으로 너를 바라보며 바뀌지 않는 나의 마음이 너를 따라 바뀌도록 하리라.” 이렇게 다짐하였다. 그 글이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글(饒白髮文)이다. 거울 속의 흰 머리카락을 보면서 마음이 어른답지 못한지 따져보는 일, 이것이 어른이 되기 위해 아침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종묵 서울대 인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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