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최인수(68)씨는 서울 금천구 25평 아파트 문을 열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서방, 왔어요?”라며 살갑게 맞아줄 테지만 아내는 이제 그의 곁에 없다. 아내 고 최순복(61)씨는 용유초등학교 동창 16명과 환갑 여행으로 세월호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동창 17명 중 12명이 숨졌다.
4일 아내의 삼우제까지 치렀지만 최씨는 “아직도 아내의 죽음이 거짓말 같다”고 했다. 그는 “혼자 밥을 먹다가 문득 ‘여보’하고 부르곤 한다. ‘왜요’라고 대답하며 집 어디선가 달려나올 듯한데…”라며 흐느꼈다.
아마추어 권투선수였던 최씨는 마흔두 살까지 서울 구로구에서 권투체육관을 운영했다. 서른여섯 살에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에도 가난한 선수들을 먹이고 재우며 훈련시키느라 부부는 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았다. 최씨가 체육관을 정리하고 정수기 판매, 전자제품 수리 일을 전전할 때도 고인은 사람들이 버린 옷가지와 폐지를 수집해 팔면서 묵묵히 남편을 챙겼다.
20년 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 전동 드라이버 수리점을 연 최씨는 “가게가 자리를 잡아서 집사람에게 이제 식당 일은 그만두라고 한 게 지난해다. 이제 호강시켜주겠다고 했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힘든 보모 일을 하면서도 내가 걱정할까 봐 알리지 않던 착한 사람에게 나는 ‘왜 늦게 들어오느냐’고 닦달하기만 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고인은 친구 같은 어머니였다. 딸 혜민(30)씨는 “엄마와는 체형이 비슷해 옷도 서로 빌려주면서 자매처럼 지냈었다. 챙겨줄 때마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싫은 소리를 했었다”며 울먹였다.
부녀는 16일 세월호 사고 소식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연락할 곳이 없어 최씨가 인천 청해진해운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거의 한 시간 만에 연결된 해운사 직원은 “모든 것을 해경에 넘겼으니 그쪽에 알아보라”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부녀가 목포에 도착한 시간은 사고 당일 오후 8시. 목포시내 병원, 진도실내체육관, 팽목항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부녀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고인은 지난달 30일 세월호 5층 로비에서 단원고 학생 3명과 함께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구조된 동창생들은 배가 기울 때 고인이 허리를 다쳐 함께 뛰어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혜민씨는 “학생들이 엄마를 부축해 5층으로 피신했다가 함께 사고를 당한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용유초 동창회 부회장인 고인은 발견 당시 구명조끼 안에 동창회비와 여행 경비 영수증이 들어 있는 가방을 단단히 메고 있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진도=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