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16년의 안산 개인택시 기사 김모(52)씨는 7일 오전 택시 영업등을 껐다. 집안일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평소 같으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시내를 누빌 시각이지만 이날은 생업을 접고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희생자 가족들을 위한 ‘무료 수송 택시’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노란색 조끼를 챙겨 입은 그는 택시 앞뒤 창에 ‘세월호 유가족 수송차량’이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고 택시 문고리에는 검은색 리본을 손수 묶었다. 오늘 하루는 운전하며 즐겨 듣던 라디오도 켜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가족들이 편안하게 오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혹시나 차가 불편할까 걱정”이라며 묵묵히 차 안을 쓸고 닦았다.
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화랑유원지 한 켠에는 안산시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택시 10여대가 유가족을 무료로 태우기 위해 상시 대기 중이다. 안산시청 상황실에서 요청이 오면 당일 순번 차량이 승객을 태우러 가는 방식이다. 사고가 난 다음날인 17일부터 진도, 목포는 물론 장례식장이 위치한 안산, 시흥, 수원 등을 오가며 희생자 가족과 친구들의 중요한 이동 수단이 되고 있다. 또 진도나 목포에서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올라오기 힘든 희생자 가족을 위해서 대리운전도 하고 있다.
백용호 경기도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안산시조합장은 “우리 조합원 자녀도 희생자 중 3명이나 된다”며 “다들 안산에서 택시 오래 하면서 시민들 덕에 생활해 온 사람들이라 주저 없이 돕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800명의 조합원도 동참하겠다며 앞다퉈 신청했다. 김씨 순번이 사고 22일째인 이날에서야 돌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안산과 진도를 왕복한 택시만 벌써 100대가 넘는다. 임시분향소에서 합동분향소로 영정과 위패를 옮길 때도 택시 45대가 맡아 4번에 걸쳐 옮겼다. 백 조합장은 “유가족을 태운 택시 안에서는 정적만 흐른다”며 “유가족 마음을 생각해 휴게소도 안 들르고 진도까지 쭉 가는 기사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뜻 나서기 쉽지는 않은 일이다.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은 403㎞, 목포까지는 330㎞로, 4~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13만~15만원이 나오는 기름값, 도로교통비도 기사들이 부담한다. 당일 바로 올라오지 않고 진도에서 2~3일을 머무르는 희생자 가족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잘 곳이 없어 차 안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다. 며칠 전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을 태우고 새벽 3시 안산에서 목포로 출발했던 한 기사는 “그래도 나는 바로 올라 와 힘들지 않았던 편”이라며 “며칠 있다 오는 기사들의 경우 식사는 자원봉사자들이 해결해 주지만 기다릴 곳과 잘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희생자 가족의 교통편의를 자원봉사 택시 기사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한 가족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안산 개인택시 운전사 분들이 가족들 태워다 준다고 하던데 (이건) 당연히 나라가 해야되는 거 아니냐”며 정부의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안산=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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