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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인권이다!

입력
2014.05.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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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사진 한 장이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세월호 참사 초기 진도체육관에 있던 실종자 가족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그랬다. 단상(壇上)의 대통령을 향해, 단하(壇下)의 실종자 가족 여성 한 분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내 새끼 살려달라, 제발 내 새끼 저 차가운 바다에서 어서 구해달라”고. 박 대통령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고 있지만, 단상과 단하의 간격만큼이나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지 않다.

박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와 그냥 부둥켜 안고 함께 울어줄 수는 없었을까,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드러난 이 국가적 재난의 초기에 단 3일만이라도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아니 단 하루라도 실종자 가족과 밤을 새우면서‘정서적 거리감’을 좁혔더라면 이렇게 큰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했을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국난이 닥쳤을 때 지도자의 치열한 자기 반성은 문제를 푸는 단초이다. 박 대통령은 사고 초기부터 제3자적 화법으로 책임을 회피했고, 여론에 떠밀려 거의 20일이 다 된 지난 4일 진도 재방문에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부덕의 소치”라고, “모든 책임은 국정 최고 책임자인 저에게 있다”고 진작부터 솔직하게 인정했어야 했다. 지난 대선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정부 역량을 집중하겠다” “안전한 대한민국이 국민행복의 버팀목”이라고 목청을 높인 당사자가 아닌가.

세월호 참사는 납득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비극이다. 20여년 전 초년병 기자 시절 초대형 사고를 잇따라 겪었지만 그 때는 합리화할 근거라도 있었다. 93년 서해훼리호 사고,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이 잇따라 터졌을 때 1960년대 이후 30여년간 개발시대 압축성장 과정에서 날림ㆍ부실공사, 안전의식 부재가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라고. 권위주의 시대에서 문민정부로 넘어오면서 사회 분위기 이완까지 겹쳐 더욱 그런 것이라고. 성장에만 집착해 생명경시 풍조가 퍼졌다고. 사회 전체에 팽배한 배금주의와 적당주의, 대충주의, 설마주의가 문제라고.

이번 참사에서 20여년 전의 논리와 원인 진단들이 낡은 축음기처럼 반복되는 현실을 지켜보는 건 참담한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에서 허덕이던 보릿고개 때나, 허리를 좀 펴던 8,000~9,000달러 시대의 안전의식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지금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안전은 인권이다. 아니 인권이어야 한다. 미국 심리학자 애브러햄 매슬로우에 따르면 안전은 인간의 5가지 욕구 가운데 생리적 욕구와 함께 가장 기본적 욕구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절대빈곤의 시대, 안전을 챙기는 건 사치였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뛰던 개발시대, 안전을 생략하는 건 당연시 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줄이거나 뺄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되물으며 분노하고, 비통해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이러면 참사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있는 것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컨트롤타워니, 국가안전처 신설이니 해 봐야 소용이 있을 까, 불신만 팽배하다.

한 사회의 시스템은 현장의 매뉴얼로 작동하고, 그 매뉴얼은 사람이 움직인다. 결국 사람이 지닌 가치와 비전에 달려있다. 아직도 개발시대의 낡은 시스템만 작동한다면 응당 바꿔야 한다. 관건은 어떻게다. 안전을 보는 발상의 대전환만이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차이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상황 반전의 기회는 있다. 국민의 분노와 불신의 골을 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국민이 그만 슬퍼하자고, 이제 다시 일어서자고 말할 때까지 각계각층을 만나 함께 공명하고, 경청해야 한다. 그런 다음 제안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다음달 지방선거가 급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가선 안 된다. 나라의 미래는 더욱 급하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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