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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감춰뒀을까… 화산재 속 깨어난 사원서 잡념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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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감춰뒀을까… 화산재 속 깨어난 사원서 잡념 씻다

입력
2014.05.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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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층계식 피라미드형으로 1,200년 전 세워진 보로부두르 사원. 세계 최고의 불교사원으로 꼽히는 8층 규모의 이 사원에는 부처의 일대기가 조각돼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 제공/2014-05-07(한국일보)
[거대한 층계식 피라미드형으로 1,200년 전 세워진 보로부두르 사원. 세계 최고의 불교사원으로 꼽히는 8층 규모의 이 사원에는 부처의 일대기가 조각돼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 제공/2014-05-07(한국일보)
믄듯 사원 앞마당에서 400년이 넘도록 근위병처럼 자리를 지킨 보리수는 신기하게도 뿌리가 위로 자라 아이들이 그네처럼 탄다. /2014-05-07(한국일보)
믄듯 사원 앞마당에서 400년이 넘도록 근위병처럼 자리를 지킨 보리수는 신기하게도 뿌리가 위로 자라 아이들이 그네처럼 탄다. /2014-05-07(한국일보)
우붓 시장에서는 물건 값을 깎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술인의 마을'인 만큼 상점마다 미술품, 의류, 그릇, 기념품 등을 판다.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제공/2014-05-07(한국일보)
우붓 시장에서는 물건 값을 깎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술인의 마을'인 만큼 상점마다 미술품, 의류, 그릇, 기념품 등을 판다.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제공/2014-05-07(한국일보)

뜨거운 태양 아래 30도를 넘는 덥고 텁텁한 날씨. 걷고 맛보고 느끼는 여행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열대성 인도네시아의 여행이 그리 반가울 리 없을 터. 가만히 있어도 얼굴과 목, 겨드랑이 등에 땀이 차오르는 찜찜한 경험이 싫은 여성이라면 더욱…그래서일까. 여행 때마다 샀던 가이드 책자는 아예 눈길 조차 주지 않았고 가족과 동료를 위한 이 나라 특산물에도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그렇게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6시간 반을 날아 자카르타의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 항공편으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족자카르타로 들어갔다.

‘천년의 도시’ 족자카르타

“이 곳은 한국으로 치면 경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좀 안다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족자카르타를 이렇게 설명한다. 족자카르타가 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와 닮은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가 발달한 족자카르타에는 맑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은 듯 뾰족하게 솟은 사원이 즐비하다. 그 사원들이 잡념의 끈을 느슨하게 만든다. 뒤틀렸던 머릿속이 사원의 웅장함과 숭고함에 저절로 맑아진다. 힐링의 순간이다.

안전하다는 뜻의 ‘족자’와 도시를 뜻하는 ‘카르타’가 만나 ‘안전한 도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의 보호를 받아 안전하다는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이 도시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 하다. 이곳의 그 많은 사원 가운데 보로부두르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미얀마의 바간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그래서 보로부두르는 족자카르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관광객 역시 이 사원을 보기 위해 족자카르타를 찾는다. ‘언덕 위의 사원’이라는 이름처럼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멀리서 보면 하얀 구름을 커튼 삼아 수줍게 얼굴을 가릴 때가 있다. 1,200년 전 샤일렌드라 왕조가 건설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원은 대지진과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 속에 잠들면서 오랫동안 그 존재가 잊혀져 있었다. 영국이 1814년 보로부두르 유적을 발견했으며 네덜란드 정부가 1907년부터 4년 간 유적 복원 사업을 했다. 네덜란드가 보로부두르 복원에 나선 것은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50년 동안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다가 1945년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1970년대에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다시 유적을 복원했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보로부두르는 면적 약 1만2,000㎡, 높이 약 32m의 층계식 피라미드형 유적이다. 총 8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1~3층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 4~7층은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속세, 8층은 극락세계를 각각 표현하고 있다. 층마다 벽을 따라 부처의 삶과 가르침이 조각돼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꼭대기 층은 종 모양의 탑들이 둥그렇게 이어져 있으며 가장 큰 종탑이 세워진 정상을 중심으로 7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계단을 걸어 8층에 올라간 뒤 많은 관광객을 뚫고 두 손을 모은 채 7바퀴를 직접 돌아보니 부처가 말한 깨달음의 의미가 어느 정도 전해지는 듯 했다.

보로부두르에는 504개의 부처상이 있는데 그 중 200개의 부처상 머리가 없다. 오랫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던 네덜란드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머리 없는 부처상에서 씁쓸함과 숙연함이 느껴졌지만 이 사원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는 설명에 다시 한번 눈이 크게 떠졌다.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 없이 이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힌두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쁘람바난 사원 역시 1,200여년 전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1991년 보로부두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머라피산의 화산 폭발로 무너져 현재까지도 복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사원 주변의 수만 개 돌이 재건을 기다리는 중이다. 쁘람바난 사원에는 브라마(창조의 신), 시바(파괴의 신), 비쉬누(유지의 신) 신전이 우뚝 솟아 있다. 지금은 3개의 신전과 주변 10여개의 탑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원래는 1,000여개의 사원이 하루 만에 완공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러나 현실은 10년에 걸쳐 신전 1개를 복원하는데 그치고 있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믄듯 사원과 빠원 사원에서도 소박한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다. 두 사원 모두 보로부두르 사원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택가 가까이 있어 서민의 삶 속에 뿌리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믄듯 사원은 자바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삼존불 석상의 근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는 필수 코스가 됐다. 사원 앞 마당에는 수령 400년이 넘은 보리수 나무가 근위병처럼 지키고 있다.

자연 휴양지 발리

족자카르타의 여운을 안은 채 비행기로 한 시간 반 동안 날아 도착한 발리에서도 신의 가르침은 여전했다.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꽉 막힌 왕복 2차로 도로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다가도 한 집 걸러 하나는 되는 듯한 힌두 사원에 눈이 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얀야르 지역의 바투안 사원은 1,000년 전 건립됐다. 이 사원은 두 개로 쪼개 놓은 듯한 탑의 형상을 지나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둘로 쪼개놓은 듯한 형상은 찬디 븐타르 즉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다. 족자카르타의 사원이 크고 장엄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면 발리의 사원은 정교하게 조각된 작은 탑들이 친근하게 관광객을 맞는다. 캄보자꽃과 과일 등이 야자수 잎 접시에 담겨 사원 곳곳에 놓여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신에게 제사를 올린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이다. 사원 안에서 여인네들이 야자수 잎으로 접시 만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뜻을 지닌 발리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참으로 소탈하다.

기얀야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우붓은 미술관, 박물관, 재래시장이 운집한 발리의 중심지다. 그 중 푸리 루키산 박물관은 발리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박물관으로 내부에 세 개의 미술관을 따로 운영할 만큼 규모가 크다. 안으로 들어서면 잘 꾸며진 정원에 연꽃이 드리운 연못이 있어 아담한 궁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미술관에는 독립 이전과 이후 활동한 발리 전통 화가들의 미술과 조각품이 강렬한 색채를 뽐내며 전시돼 있다. 연대순으로 전시돼 발리 미술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우붓 시장으로 넘어오면 형형색색의 장식품과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다. “우붓 시장에서는 무조건 4분의 1로 깎아라!”라는 말이 있다. 게다가 상점들이 제시하는 가격 역시 제각각이다. 한 가게에서 75달러를 부른 접시 세트를 일행 중 한 명은 그 가격의 7분의 1 수준인 10달러에 구입했다. 상인은 연신 “굿! 굿!’을 외치며 10달러를 받았는데 그러면서도 흥정을 잘 한다고 칭찬까지 했다. 원가는 궁금해하지 마시라. 상인들도 발설하지 않으니 아무리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우붓 시장의 도로 주변에는 액세서리와 생활용품, 기념품, 전통 의상 등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거기에 명품을 가장한 짝퉁 상점도 있다. 시장의 끝에는 멋진 그림과 조각상을 파는 가게가 자리한다. 예술인의 마을로 불리는 우붓에는 실제로 많은 예술인이 모여 산다. 거리가 한가롭고 여유가 넘친다. 시장 안쪽으로는 서울의 삼청동처럼 예쁜 카페들이 있다. 카페 테라스에서 발리 전통차나 커피를 마시는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인도네시아가 아시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만큼 다양한 커피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바닷가에서 새벽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리젠시 발리 호텔과 가까운 사누르 비치가 좋다. 바다 위로 솟은 햇빛을 마주하면 몸과 마음, 머릿속의 때를 씻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이른 아침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귀가 간지럽다. 어부들은 반짝이는 바다에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는다. “슬라맛빠기”라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여행수첩]

●인도네시아 국영항공사인 가루다인도네시아가 인천_자카르타 구간을 6월부터 주9회로 증편한다. www.garuda-indonesia.co.kr (02)773-2092. 인도네시아로 가려면 비자가 필요한데 이 항공편(자카르타행)을 이용하면 기내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인천공항의 도착비자서비스카운터에서 25달러를 지불하면 기내에서 인도네시아 이민국 직원이 입국 수속을 해준다. ●족자카르타나 발리 등의 사원을 방문할 때에는 사룽이라는 전통 의상을 착용해야 한다. 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짧은 스커트나 모자 등을 착용하면 사원 안에서 통제를 받을 수 있다고. ●족자카르타는 한국보다 2시간, 발리는 1시간 느리다. 기온은 고온다습하다. 족자카르타를 여행할 때 인력거를 타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다. 30분에 한국 돈 3,000원 정도. 단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점을 참고하길. 족자카르타ㆍ발리=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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