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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안전·연대가 치유의 출발점

입력
2014.05.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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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또는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감정은 억울함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은 너무도 한심한 인재여서 큰 억울함이 존재한다. 하물며 그 부모들의 마음은 어쩌랴. 그래서 국민이 공분하고, 애석함에 마음을 끓이는 조문객의 줄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유족들이 스스로 나서서 특검을 요구하는 것 또한 안타깝다. 국민의 욕구를 대신한다는 정치권이 먼저 나서지 않고 그들 스스로 서명을 받아서 특검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의 존재감에 대해 묻게 한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피해자는 그 피해를 잊을 수 없다. 원한이 사무치고, 증오가 심장에 박히어 심장이 뛸 때마다 즉 살아있는 순간순간 아픔이 전해지게 된다. 그리고 죽은 영혼도 편치 않다. 수많은 설화는 억울한 죽음의 영혼들이 지상을 떠나지 못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채로 지낸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을 위해 정의는 실현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사회를 안심할 수 있는 전 국민에 대한 첫 번째 치유이다.

다음으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확고한 안전에 대한 조치이다. 연일 신문에선 또 다른 사고 소식이 전해지고 있고, 특별한 조치 없이 여전히 비슷한 조건의 배들이 바다를 오가고 있다. 이권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이익집단들의 카르텔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이 상황을 정지시키고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잔인할 정도의 수준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 조치는 엄정한 국민의 감시와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장구한 부패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것도 국민의 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관료와 기업들의 전횡을 과연 현 정치권과 경제권이 막아낼 수 있을까?

정의와 안전에 대한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사람들은 자신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할 수 있다. 그전까지 희생자 가족과 관련자들은 자신에게로 마음이 향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국가적 요구는 희생자와 그 관련자들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될 것이 두렵다. 왜냐하면, 그들만으론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외적인 연대와 내적인 연대 모두가 필요하다.

현재 가장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 사고로 개인도 파괴되고 지역사회도 파괴되는 것이다. 한 집 걸러 피해자와 구조자가 뒤섞여 있고, 실종, 유족, 생존의 이웃들이 뒤섞여 살아야 하는 동네의 상황은 아주 크고도 섬세하고 유연한 힘이 필요하다. 연대에 관해 말하긴 쉽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연대가 필요하고, 연대 자체가 치유의 공동체적 기초가 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구조 가족과 희생자 가족 모두가 함께 하나가 돼 아이들을 보살피고, 동네도 살리고, 또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 과정을 국민과 함께 잘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는 국민의 과제이고, 안산시민의 과제이고, 또 지역 공동체의 과제이다. 이런 지역공동체의 회복에 실패해 모두가 이주하고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 기억해야 할 일도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또 이 억울한 죽음의 과정에서 아름답게 대처한 숭고한 죽음조차 사라지게 된다. 형식적인 추모건물과 요란하게 만든 센터들은 있겠지만, 정녕 함께 한 사람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는 흔적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큰 피해, 희생자 집단이 강해지는 것은 결국 뜨거운 연대, 분열 없는 연대를 통해서이다.

정의, 안전, 연대라는 세 가지 조건이 희생자 가족과 구조자들이 자신을 돌보면서 심리적 외상을 다룰 수 있도록 마음을 허락하는 순간이다. 상처가 소독되지 않았는데 수술을 시작하는 의사는 없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치료의 전제이다. 사실 이 사실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과연 이 과정이 정말 국민들의 의혹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재의 재난 수습과정은 거의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ㆍ경기도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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