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밖에 있던 대부업체들이 속속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면서 2금융권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대형 대부업체들이 대부업을 사실상 포기하고 저축은행으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업계의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저축은행 업계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바짝 긴장하고 있고, 대부업계는 자칫 기반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부업체 중 처음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한 웰컴크레디라인(웰컴론)은 7일부터 예신저축은행을 웰컴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영업을 시작한다. 대부업계 자산규모 3위인 웰컴론은 2월 예금보험공사의 가교저축은행 매각에 참여해 예신저축은행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으며,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정례회의에서 웰컴론의 예신저축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대부업계 자산 1위 에이앤피파이낸셜(A&P)대부(러시앤캐시)도 조만간 금융위에 저축은행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러시앤캐시 역시 지난 2월 예보의 가교저축은행인 예주ㆍ예나래 저축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행정지도 형식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저축은행 인수 자격 조건으로 향후 5년간 대부잔액 40% 축소, 중장기적으로 대부업 폐쇄를 내걸었다는 점. “기업의 영업 자유를 침해하는 사실상 초법적 규제”라는 비판이 비등했지만, 결국 웰컴론 측은 금융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동안 고심을 거듭해 온 러시앤캐시 역시 최근 대부업 축소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최종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진출이 최 윤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중장기적으로 대부업에서 발을 빼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웰컴론에 이어 러시앤캐시까지 저축은행 영업에 뛰어드는 경우 서민금융 시장에는 큰 회오리가 몰아칠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 전체적으로 보면 저축은행 사태 이후 침체 일로이던 업계에 모처럼 활력소가 될 수 있을 전망이지만, 개별 저축은행들로선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다. 저축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러시앤캐시 등 대형 대부업체의 경우 어지간한 제도권 금융회사를 능가하는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시장을 크게 잠식당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웰컴론 측은 대부업체 우량 고객을 저축은행 고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까지 세워 놓았다.
대부업계에는 더 큰 비상이 걸렸다. 작년 6월 기준으로 대부업체 총 대부잔액(9조1,793억원) 중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24%(2조1,990억원)에 달한다. 이들 두 회사가 대부잔액을 현재의 40%로 줄일 경우 줄어드는 대부잔액이 1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당장은 소규모 대부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대부업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기반 자체가 붕괴될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당국은 점진적으로 대부업계를 저축은행 업계로 흡수시킨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연 3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해 온 대부업체 고객들이 저축은행에서 10~20%대 중간 수준 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뜻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대부업계 한 관계자는 “자칫 어느 쪽에서도 흡수하지 못한 저신용자들이 불법 대부업체 등 지하 사금융 시장으로 흘러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