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어도 건강하단 소리 들었는디 입이 쓰디써서 밥이 안 들어가. 소화가 안 돼 전날 밤에 오바이트하고 그렁께….”
5일 오후 경기 안산 고잔1동의 한 연립주택.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선 임근채(55) 통장이 도시락을 전달하자 조모(78) 할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밥을 조금도 못 넘기겄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손자를 찾지 못한 할머니의 집은 창문이 모두 닫혀 있었다. 햇빛도 들지 않아 대낮인데도 집안은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사고를 당한 손자의 부모는 사고 직후 진도로 내려갔고, 할머니는 중3 손녀와 함께 눈물과 침묵이 흐르는 ‘빈 집’을 열흘 넘게 지키고 있다. 며칠째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밖에 나가면 이웃덜이 찾았냐고 물어. 좋은 뜻이겄지만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더라고.” 여동생의 방에는 실종된 오빠의 중학교 졸업앨범이 펼쳐져 있었다.
전남 강진에서 농사를 짓다가 남편과 사별한 후 안산으로 올라온 할머니는 공사장 페인트공, 여관 운영 등으로 다섯 남매를 키워냈다. 지금 그에겐 한 가지 바람만 남았다고 했다. “(시신이라도) 어서 찾아서 좋은 데 보내려면 기운 차려야 하는데….” 할머니는 쌀국수 등이 담긴 도시락을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손자의 시신은 이날 늦은 오후 발견됐다.
단원고가 위치한 고잔동 일대 통장 20여명은 진도로 부모가 떠나고 집에 남은 어르신, 초중고생 등 희생자 형제들을 위해 18일째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17세대 34개(당일 저녁ㆍ다음날 아침) 도시락을 전했지만 5일에는 36세대 187개까지 늘었다. 고잔1동 주민센터 이병인 사무장은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지만 아직 밥을 챙겨먹을 수 있을 만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지 못한 유가족들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심각한 공황 상태를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통장은 “실종자 가족은 물론이고 장례를 치른 지 10일 정도 지난 이들도 충격으로 인해 식재료를 사러 나가는 것조차 꺼린다. 희생된 자녀의 방에 불을 켜놓고 며칠 째 두문불출하는 유가족들이 많다”고 했다. 서모(62) 통장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거부하거나 도시락만 전달받고 바로 문을 닫기도 한다”고 말했다.
돌볼 가족이 없거나 정신적으로 정상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이다 보니 집 안의 일상용품은 바닥나고 노인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위협받고 있다. 사고 발생 3주가 넘으면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어르신 4명이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았고, 속옷과 양말 등이 부족해 주민센터에서 적십자에 구호물품을 요청해 조금씩 나눠주고 있다. 고잔1동의 한 통장은 “정부의 도움이 현장에 초점이 맞춰있고, 그마저도 정신적 치료에 집중돼 있다. 어르신 등 남겨진 유가족의 생활을 위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글ㆍ사진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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