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중의 50명만 응답을 한 자동응답전화(ARS) 여론조사 결과로 대통령 지지율을 측정하고, 정당 내 경선 후보를 정하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 입니다.”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의 최인수 대표는 6ㆍ4 지방선거 D-30인 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대통령 지지율 등 여론조사를 둘러싼 신뢰도 논란의 근본 원인은 ARS 조사 방식 때문”이라며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는 ARS 여론조사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에 따르면 과거 여론조사는 면접원이 직접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약 5년 전부터 기계를 통해 자동으로 전화를 돌리는 ARS 방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당내 경선 등 여론조사의 활용은 갈수록 느는 데 비해 자택전화를 통한 면접식 전화조사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별도의 콜센터가 필요 없어 비용이 저렴한 데다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 했다. 그 결과 현재 600여 개 여론조사 업체 가운데 대다수는 ARS 방식을 택하고 있다.
문제는 ARS 방식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성별이나 나이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기계로 돌리다 보니 응답률 자체가 크게 낮다. 최 대표는 “실제로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70%대라는 ARS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A업체의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5%대”라며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과정에서 실시 중인 ARS 조사의 응답률은 3% 미만인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반면 면접식 전화조사는 응답률이 15~20% 수준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여론조사결과가 민의를 크게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그는 “ARS 응답자는 상대적으로 노인층이 많다”며 “그에 비해 응답자가 적은 젊은 층의 의견을 보정하기 위해 가중치를 두는 과정에서 실제 여론과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젊은 층의 표본이 적다 보니 1~2명만 이상하게 답변을 해도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자동으로 착신 전환하는 등 갖가지 방식으로 ARS 여론조사를 조작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후보자의 홍보를 위해 여론조사를 빙자한 ARS 전화를 남발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까닭에 40여 개의 대형 리서치사들이 속한 한국조사협회와 조사통계학회는 최근 ARS 방식은 과학적이지 않아 정상적인 여론조사결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조사협회 부회장을 겸직 중인 최 대표는 “해외의 경우 ARS 방식은 참고용으로 사용되는 정도”라며 “국가 정책의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 같은 현상의 근원으로 ‘싸게 빨리’병을 꼽았다. 그는 “정당들이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하는 데도 저가 입찰이 당연시된다”며 “지식서비스 산업에도 품질보다 비용과 시간만을 따지려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비판했다.
1997년 기업 마케팅리서치 전문업체로 출발한 엠브레인은 여론조사 분야에 처음 진출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휴대폰과 집 전화를 혼합한 이중표집 방법을 첫 도입, 가장 결과에 근접한 여론조사 결과로 주목받았다. 내년에는 리서치사 최초로 주식시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지방선거 D-30을 맞아 최근 여론 동향을 묻자 “자체 조사 결과 세월호 사태 초기 대통령 지지율은 60%대 중반을 유지했지만, 지난주 53%까지 떨어졌다”며 “다만 떨어진 지지율이 야당으로 이동하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사태의 여파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 혐오증이 심화하면서 내달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글ㆍ사진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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