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동통신사들의 불법ㆍ과다 보조금을 근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고 강조했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지난 2일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 얘기대로라면 이 법이 시행되는 10월부터 무법천지와도 같았던 이동통신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 하지만 시행령 마련을 앞두고 의견이 다른 통신업체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주요 내용
단통법의 핵심골자는 이동통신업체의 보조금은 말할 것도 없고, 휴대폰 제조사들의 보조금(판매장려금)까지 공시토록 한 것. 즉 ▦휴대폰 출고가 ▦이동통신사 및 제조사 보조금 ▦출고가에서 보조금을 제외한 실제 판매가 등 3가지를 홈페이지 등에 공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출고가가 90만원이고 이동통신사 보조금이 27만원, 제조사 장려금이 15만원이면 소비자 실제 구입 가격이 48만원인데 이런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사실상 판매점마다 휴대폰 가격이 동일해질 것”이라며 “그만큼 불법 보조금 경쟁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위반 시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에 관련 매출액의 3%(종전 1%)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영업이익이나 순이익 아닌 매출액의 3% 과징금은 어마어마한 액수다. 대리점과 판매점도 위반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규모 유통업체는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통법의 또 하나 핵심조항은 장기 이용자가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 미래부 관계자는 "보조금 경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동통신사들이 충성도 높은 장기고객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신규고객, 번호이동고객에게만 혜택을 집중한다는 점"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가입자가 계약 갱신시 기존 휴대폰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 보조금 만큼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필요한 휴대폰 교체를 막아 낭비를 줄이고, 휴대폰을 교체하지 않는 가입자도 보조금 혜택을 동일하게 받을 수 있어 이용자 차별행위가 줄어든다.
또 이동통신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어지는 유통구조에서, 지금까지 일선 판매점은 전적으로 대리점 소관이었지만 앞으론 이동통신사에게 관리감독 책임을 지도록 했다.
또 다른 신경전
정부는 당초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단통법 제정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지만, 정부에 제출하는 자료와 공개범위를 놓고 휴대폰 제조사들이 '영업비밀'이라며 강력 반발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때문에 제출 및 공개범위를 일부 조정해 제조사 불만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엔 시행령에 들어갈 세부 사항을 놓고 이통사들의 의견이 엇갈려 또 한번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통법을 둘러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선 꼴찌탈출을 위해 현재 공격적 마케팅을 주도하는 LG유플러스는 현행 27만원으로 규정한 휴대폰 보조금 상한선과 일 평균 번호이동건수 2만4,000건으로 책정한 시장과열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에 육박하고 작년 일 평균 번호이동건수가 2만8,000건인 점을 감안하면 현행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경쟁활성화를 위해 이런 부분을 현실화해 시행령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하는 1위업체 SK텔레콤과 2위 KT의 생각은 다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보조금 상한선과 번호이동건수를 확대하면 보조금 경쟁이 지속돼 결국 단통법 제정이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앞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소비자와 시장 발전 방향으로 이견을 좁히겠다”고 밝혔지만, 이통사들로선 사활을 건 싸움이라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단통법에도 불구, 보조금 싸움이 쉽게 진정되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보조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했지만 이것만으로 완전근절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훨씬 더 교묘하고 훨씬 더 은밀한 방법으로 보조금이 음성화될 공산도 크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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