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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캠페인 부재 국가

입력
2014.05.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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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황금연휴 동안 국민 얼굴에는 노랑꽃이 피어 있었다. 공공장소엔 노란 리본이 즐비했고 방송에 나오는 공무원의 노란 점퍼도 여전히 시선을 끈다. 조심스레 노랗게 멍든 마음을 추스르고 희망을 찾자는 ‘국가 개조론’도 등장하고 있다. 대형 참사를 겪으며 경계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사회가 정치 담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과 국민이 망각의 방에 갇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개조를 논하기 전에 당장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 안전만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한다. 성금을 내고 노란 리본에 애도 메시지를 적는 현재보다 여러 해가 지난 후 희생된 아이들을 기억하며 무엇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 캠페인이란 사건 기억, 원인 복기, 문제 개선, 상처 회복, 그리고 신뢰 복원이라는 다섯 가지의 역할을 수십 년에 걸쳐 반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인재(人災)를 겪으면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자성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국민 캠페인을 갖고 있지 않았다. 국가위기 때마다 국민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때뿐이었다.

대형 참사 때 대국민 소통은 사고 직후와 수습 이후로 나뉜다. 사고 직후 소통은 정보의 정확성, 신속성을 바탕으로 철저히 희생자 가족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은폐와 의혹이라는 불신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매번 사고 직후 대응의 어설픔만 드러내다 시간을 허비했다. 동시에 비판만 일삼는 인물들의 무책임한 발언은 불신을 초래해 정치적 논쟁만 일으켰다. 과거로부터 누적된 원인은 찾지 않고 책임공방만 벌이다 수습 이후의 소통 기회마저도 놓치게 된다.

수습 이후 소통은 주제의 명료성과 반복성을 통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국민이 사고의 교훈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명료한 의제에 대한 반복적인 자성으로 국가개조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희생된 청소년들, 15년 전 씨랜드 참사와 같은 안전사고로 잃은 어린이들, 그리고 개선되지 않은 교육 현실 속 노란 버스를 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교육비 지출과 청소년 자살률 최상위,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를 기록하며 아이들의 물리적 안전과 정신적 안정 모두를 지켜주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 보인다. 이번만큼은 정치권이 국가 기념일로 합의한 ‘학생안전의 날’을 전후로 추모 그 이상의 실천적 국민 캠페인을 준비해야 한다. 학생안전의 날이 정부에게는 매년 새로운 시나리오 기반의 모의 훈련 결과가 반영되는 위기관리 매뉴얼 갱신일이다. 캠페인의 촉진을 위해 사고 장소, 익명의 봉사자, 무사귀환과 애도의 마음을 대변해 준 리본 등을 다양한 홍보 콘텐츠로 상징화하고 국민과 지속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

지난 21년간 서해 훼리호의 292명 희생자를 기억한 적이 있었는가. 11년이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 통곡의 벽은 아직도 패널에 가려져 있다.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의 사고 장소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기억은커녕 추모의 상징물이 혐오시설로 취급되었던 것이 우리 현실이다. 박물관과 추모 연못이 있는 뉴욕 맨해튼 911 메모리얼. 그곳엔 붕괴 현장에서 살려낸 일명 생존나무(Survivor Tree)가 심어지고 새 건물에는 ‘절대 잊지 말자(NEVER FORGET)’는 구호가 걸려있다. 영국에서는 1920년 이후 매년 11월 희생된 군인을 추모하기 위해 가슴에 붉은 양귀비꽃을 단다. 셰필드 힐스버로 축구장 참사 25주년 때는 수만 명이 입장한 경기장에 96명의 희생자 숫자만큼 관중석을 비워두었다. 희생자 숫자에 무감각해질 정도의 대형 참사 속에서 한 명 한 명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준다. 국가개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선진국이란 사고를 잊지 않는 국가다. 아픔을 전통과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는 국가다. 그리고 참사에 의미를 부여해 미래와 긍정어휘로 소통하는 국가다. “희생된 아이들을 잊지 말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잃지 말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국민 캠페인 구호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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