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18일째. 하루에도 몇 번씩 해대는 ‘울컥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화가 나는 감정의 기복도 여전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참담함과 비통함에 무겁게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도 그대로다. 누구를 만나든 대화의 시작은 늘 단원고생들, 아이들 이야기다. 그리고 선장과 선원들의 천인공노할 행위에 분노한다. 대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에 혀를 찬다. 이러고도 국가라 할 수 있냐고 되물으며 부끄러워한다.
대한민국은 정말 대형 참사가 많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화재, 서해페리호 침몰, 대구지하철 화재 등…. 과거 발생한 대형 참사를 떠올리며 현기증이 느껴지는 것은 수십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재난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다. 참사 때마다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무책임과 무기력, 매번 안전한 국가를 만들겠다던 정치 지도자들의 약속과 실천의 실종, 숱한 생명들을 떠나 보내고도 나아지지 않은 안전 수준, 그런 것들이 그대로 응축돼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경악케 한다. 부끄러워했고, 반성도 했으며, 다시는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노라 다짐도 했지만 다 무위에 그쳤다. 그리고 우리는 또 곱디 고운 아이들을, 그것도 수백 명이나 잃고 말았다.
여느 참사 때보다 슬픔과 고통이 뼈에 사무치고 분노가 더 치미는 이유가 이 지점에 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어른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침몰하는 배에 아이들을 남겨둔 채 허겁지겁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는 선장은 바로 우리 사회, 우리 어른들 자신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아이들을 참사로 잃는 고통을 겪고도 아이들 지키기에 무관심해져 버렸다. 안전은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은 채 과적을 일삼은 해운사, 유착의 단물에 빠져 그걸 눈감아준 관리감독기관과 두 손 놓고 있던 해양수산부, 초기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신속하고도 체계적인 구조는커녕 우왕좌왕하고 만 해양경찰…. 날 선 비판과 절규 앞에 수없이 고개를 숙였던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그 참담한 자책과 자괴가 슬픔과 고통을 배가시키고, 저 무능과 무책임이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제 어찌 할 텐가. 지금도 찬 바닷속에는 아이들이 누워 있다. 울컥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분노의 촛불도 꺼지지 않을 기세다. 국민 가슴에 난 상처에서 새살이 돋고 모두가 세월호 침몰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만으로는 아이들의 가여운 희생에 ‘가치’라는 따뜻한 옷을 입힐 순 없다. 이제 어른들은 정말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려는 일에 나서야 한다.
사고 책임자 처벌과 범 정부 차원의 안전 대책 마련,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 조치가 과거처럼 얼렁뚱땅 넘어가는 의례적 통과 절차로 전락하지 않게 하려면 철저한 진상 규명이 있어야 한다. 단원고생 학부모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보았던 세월호 침몰 직전 아이들 모습 동영상을 언론에 제공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말고 다 방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엇이 아이들을 차가운 4월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빠뜨렸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만으로는 모자라다. 수사는 사고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법 절차일 뿐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별도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 온전히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만 하는, 그러나 강력한 권한을 갖는 기구가 필요하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일으킨 근인(近因)과 원인(遠因), 부실하고 허술한 안전 관련 제도와 시스템, 사회 전반의 안전 무시 관행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조사 결과는 결과에만 머물지 않고 정부의 개선책으로 이어지도록 강제해야 한다. 조사 백서는 세월호 아이들 영전에 헌정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어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책임과 부끄러움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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