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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금수회의록

입력
2014.05.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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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간행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동물들이 인간의 잘못된 점을 들추는 회의 상황을 묘사한 우화의 신소설이다. 지금 우리 정부의 모습은 딱 그 모습 그대로이다. 스무날 가까이 온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린싹들이 무참하게, 그것도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수장되었다. 게다가 살려낼 수 있는 그 금쪽같은 시간을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날려버렸다. 허물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일삼고 심지어 올바른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데에는 잽싸다. 이러고도 국가라고, 정부라고 할 수 있는지 망연하다.

시민들은 울었다. 온종일 가슴이 먹먹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미칠 수도, 미치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와 분노는 나중이고, 그 어린 것들 눈에 밟혀서, 미안하고 안타까워 그저 울었다. 내 새끼 네 새끼 가릴 게 없었다. 모두가 우리 새끼들이다. 그건 최소한의 공감이다. 공감은 본능이고 계산은 이해다. 시민은 공감하고 정부는 계산만 했다. 그나마 옳은 계산이 아니라 제 입장과 잇속만 따지는 계산이어서 심지어 훼방까지 놓았고 언론을 조작하며 통제하고 우롱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공감보다 계산이 앞섰던 것일까? 마지못해 사과하면서도 자신이 임명한 국무위원들 앞에서만 했으며 입에 발린 말이지만 최소한 ‘부덕의 소치’ 운운하지도 않았다. 오죽하면 사과한다기보다 ‘내가 사과를 요구받는 상황에 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시민도 있을까? 심지어 “사과 할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에게 사과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계산이 실기의 원인이 된다는 걸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통감했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로 나섰던 이가 페이스북에 ‘염일방일(拈一放一)’의 고사를 올린 걸 읽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 아이가 커다란 장독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사다리 가져와라, 밧줄 가져와라, 요란 법석을 떠는 동안 물독에 빠진 아이는 꼬르륵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때 작은 꼬마가 옆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들고 그 커다란 장독을 깨트려 버렸다. 송나라 때 자치통감을 썼던 사마광이 바로 그 꼬마였다. 페이스북에서 그는 치밀한 어른들의 잔머리로 단짓값, 물값, 책임 소재 따지며 시간 낭비하다가 정작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더 귀한 것을 얻으려면 덜 귀한 것은 버려야 한다고, 지금 우리가 깨부숴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허물과 부덕보다는 관행과 적폐 운운하며 그 탓을 지난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급급하다. 속으로야 그렇게 여겨도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는 리더의 덕량을 잃어버리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공은 자신이 차지하고 허물은 부하의 탓으로 돌리는 장수 밑에 기대할 것은 없다.

금수회의록에서 게는 인간이 갖은 짓을 다 하여 나약하고 창자 없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비난한다. 이익에 눈멀어 폐선 들여온 것도 모자라 증축까지 일삼고 과적에 초과 승선 마다하지 않는 선주 모습이다. 개구리는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소견 좁은 인간을 풍자한다. 이 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둘은 아예 짝꿍이 되었다. 그들에게 공감의 능력이 있을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시민들은 그렇게 하는데 리더들은 여전히 계산 중이다. 기업에서만 인성 적성검사 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 먼저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할 일이다.

과한 눈물은 물러터지게 만들지만 모두가 우는데 홀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건 표독과 냉혈의 모습일 뿐이다. 금수회의가 다시 소집된다면 어떤 동물이 그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아니, 어쩌면 출연할 동물의 수가 모자라거나, ‘쪽 팔린다’며 출연 거부할 짐승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신 금수회의록이 궁금하다. 그리고 두렵다. 정신 차려야겠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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