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터키의 안탈리아에 출장을 다녀 왔다. 안탈리아는 해안 도시여서 여기저기 배를 타고 오고 갈 일이 많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니 배에 오르면 예전과 달리 여러 가지를 유심히 보게 된다. 일행들도 마찬가지여서 배의 여기저기를 휘둘러 보기 바빴다. 승무원들을 제외하고 20여명 정도 탈 수 있는 그렇게 크지 않은 배였는데, 비상시 안전 조치에 대한 안내가 아예 없었다.
심지어 구명복도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자 일행 중 한 명이 눈치를 채고 손가락으로 배의 천장을 가리켰다. 황당하게도 구명복이 여간 해서 찾기 힘든 1층 천장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2층으로 된 배였는데, 2층 승객들이 구명복을 입으려면 1층까지 뛰어내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2층에는 구조용 튜브도 없었다.
구명복 착용 방법은 어디 있을까. 자세히 보니 조타실 문 옆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종이를 붙여 놓고 여기에 깨알 같은 글씨와 그림으로 구명복 착용 방법을 표시했다.
거기에 뱃전까지 낮았다. 무릎에 닿을 듯 말 듯한 뱃전 너머로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불안해서 승무원에게 안전에 문제가 없냐고 물어봤다. 구명복도 보이지 않고 튜브도 2개 밖에 없다고 했더니, 승무원은 껄껄 웃으며 “전혀 문제없다”고 어깨를 두드렸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지나친 안전 불감증에 절로 혀를 차게 됐다. 반면 남의 나라 일이지만 배울 만 한 일도 있다.
2012년 8월, 필리핀 내무장관 일행을 태운 소형 비행기가 수심 62m 깊이의 바다에 추락했다. 필리핀 정부는 바로 해군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고, 사흘 뒤 기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수심이 깊어 해군 구조대가 인양에 실패하자 필리핀 정부는 즉각 민간에 구조 요청을 했다.
이때 필리핀 정부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민간에 적극적인 도움을 호소했는데, 특히 현지에서 다이빙 스쿨 사업을 하는 마스터 잠수사 자격을 가진 한국인들에게도 참여를 요청했다. 군 헬기까지 보낼 정도로 적극적인 필리핀 정부의 요청을 받은 한국인 잠수사들은 급히 구조팀을 꾸려 현장으로 날아갔고, 결국 이들이 사체와 기체 인양에 성공했다. 나중에 필리핀 대통령은 적극 구조 활동에 나서 준 한국의 전문 잠수사들을 표창했다.
섬나라인 필리핀은 선박 침몰 등 해양사고가 워낙 많아 여러가지 재난 구조책을 검토했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특히 세계프로전문다이빙강사협회(PADI)의 레스큐(구조)와 마스터 자격을 가진 잠수사들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할 경우 재난 발생 시 구조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토록 하는 방안을 거론하기도 했다.
필리핀이 이런 아이디어를 검토 한 것은 1987년 12월 여객선 도나파즈호가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2시간 만에 배가 침몰하며 4,000여명이 사망한 참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사고는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여객선 사고로 꼽히고 있다.
비록 민간 전문 잠수사의 활용 방안이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다. 구조 활동이 성공하려면 자원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활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필리핀 정부가 외국인 잠수사들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전문 잠수사의 구조활동 참여 확대를 검토한 것은 바람직한 사례로 보인다.
굳이 터키나 필리핀 사례까지 들먹인 것은 시각을 좀 넓혀 보자는 생각에서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흘릴 게 아니라 흠이라면 타산지석 삼아 우리는 그렇지 않은 지 되짚어 보고, 좋은 점은 배우면 된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우리라고 터키 사례보다 나을 게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더라도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국내외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검토해 보고 바람직한 방안들을 우리 현실에 맞게 흡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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