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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칼럼] 살릴 수 있었던 3시간 47분

입력
2014.05.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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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맑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여객선에 탄 승객 302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중 90명은 아직 시신조차 못 찾았다.

선장과 기관사 항해사 등 선원은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 내뺐다. 검찰이 조사해보니 기름값을 아끼고 화물수입을 늘리려고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닥에 싣는 물(평형수)을 1000톤이나 덜 담고 그 위에 화물은 규정보다 많이 실었다. 언제든 배가 기우뚱하는 사고가 날만했다. 수많은 감독기관이 돈으로 얽혀 불법을 눈감아줬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물에 빠지는 사고는 해운사와 감독기관, 정부가 합작을 했다.

문제는 사고 이후였다. 오전 8시 52분에 학생이 제일 먼저 신고를 했고 9시반에 해경이 현장으로 왔다. 출동이 늦은 것도 문제삼지 않겠다. 승객이었던 고등학생이 마지막으로 카톡을 보낸 시간이 10시 17분이다. 학생들이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방송을 들으며 기울어가는 배 안에 앉아 있는 동영상도 나왔다. “엄마 생각나” 하니까 “살 건데 뭘 그래”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농담도 던지며 그렇게 밝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47분 동안 배 안에 있는 아이들 누구도 구조받지 못했다.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다. 해경은 눈에 보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제치고 선장 일행을 제일 먼저 구조한 것을 시작으로 배 밖으로 나온 사람만 구조했다. 배 안에서 승객이 유리창을 두드리는데도 탈출을 돕지 않았다.

영상에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 카톡시간인 10시 17분 직후 물로 빠졌다면 오후 1시 17분까지는 살아있었다. 당시 그곳 수온이 12도 정도여서 물에 빠지면 체온이 떨어져서 3시간을 견딘다고 한다. 그러면 해경이 도착하고도 3시간 47분 동안 승객을 살릴 시간이 있었다.

해경은 9시30분에 도착했지만 38분에야 구조를 시작했다. 해경 구명정은 20분 이상 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10시부터 10시반 어름에 소방방재청 소방헬기 11대가 도착했다. 9시반에 출발했으나 일부는 전남지사가 자기를 태우고 현장으로 가라고 해서 10시5분에야 재출발해서 늦었다. 어이없는 이유로 현장에 늦었지만 그때도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해경의 반대로 구조작업에 참여도 못하고 되돌아갔다.

해군 해난구조대가 낮12시4분에 도착했다. 최정예잠수요원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뛰어난 해난구조 전문가들이다. 이때도 승객들은 살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해경의 반대로 구조작업에 참여 못했다.

미군 구조헬기도 2대가 왔다. 155킬로미터 떨어진 미군 항공모함에서 오전 11시58분에 출동했다니 MH-60기의 시속을 감안하면 낮12시34분에는 도착했다. 이때도 승객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가 돌려보냈다.

가장 줄여 잡아도 47분, 길게 잡으면 3시간 47분이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해경이 아닌 곳은 구조에 참여하지 못했고 해경은 구조하지 못했다. 선장을 숨겨주기까지 했다. 이건 그래서 사고가 아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저지른 청소년과 시민 살해이다.

그러고서 대통령이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국무회의에서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그 앞에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덧붙인 것을 사과라고 주장한다. 분별없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잘못이 크다 싶으면 춘추관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고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로 끝나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무회의장에 앉아서 “국무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대국민사과도 있는가. 대국민사과 이전에 유족을 만났을 때 사과해야 했다. 안 했다. 되려 유족이라는 사람은 무릎 꿇고 대통령은 바라보는 이 기괴한 장면은 무엇인가.

2003년 이라크전으로 사망한 미군이 139명이다. 전쟁도 아닌데,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국민 302명을 죽게 만든 이 정부는 과연 나라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가. 위기가 닥쳤을 때 신뢰할 수 있는가. 대통령은 정부를 통솔할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가. 남탓은 그만하고 진지하게 자문해보기 바란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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