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4시 10분쯤 전남 진도 팽목항에 40인승 버스 5대가 들어섰다. 침통한 표정의 학부모들이 발을 디뎠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로 희생된 자녀들의 장례를 치른 안산 단원고 유가족 151명. 일부 부모들이 입은 흰색 티셔츠에는 ‘우리 아이들을 돌려줘, 정부는 뉘우쳐라’ ‘무능한 공무원 퇴출하라’ ‘우리 아들 엄마 품으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안산 화랑유원지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단체로 팽목항에 내려왔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피붙이의 장례를 치르며 얼마 전까지 가슴을 치던 이들은 더한 고통과 싸우고 있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조속한 수색작업을 촉구하려고 다시 통한의 부둣가를 찾은 것이다.
이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있던 ‘가족 대책본부’ 천막 앞에 모여 “내 아이를 찾아내라”고 외쳤다. 자신들의 자녀 시신은 이미 수습돼 장례까지 마쳤지만 아직 찾지 못한 자녀들의 친구 모두 ‘내 아이’라는 심정을 담았다. 이들은 울부짖었고, 몇몇 엄마들은 오열했다. 한 50대 남성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빨간 간이 의자에 올라서 목청껏 불렀다. “내 자식아, 돌아와.”
유가족들이 ‘박근혜 정부 회개하라’ ‘이 정부는 믿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칠 때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경은 떠나가라’는 말에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도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실종자 가족 중 한 여성이 “(구조 상황) 무전이 안 들린다”고 호소하자 유가족들은 조용히 팽목항 진입로로 발길을 돌렸다. 약 1㎞를 걸으며 “우리 애를 살려내라”고 외치다가 되돌아 왔다. 지난달 23일 새벽 주검으로 인양된 단원고생 고 최남혁(17)군의 아버지(45)는 ‘부모가 죄인이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걸었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 이 나라에 태어나게 한 죄를 지었다고 했다. 텅 빈 아들 방을 보면 멍해지고, 술을 마시면 아들이 더 그리워졌다고 했다. 술을 참자니 더 외로워졌다고 했다. 그는 “두 번 다시 진도에 안 오고 싶었지만 다 같은 피해자 가족이기에 힘을 보태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눈물은 이러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여기 온 것도 미안하고, 구조된 것도 미안하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유가족들 대부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창 밖만 바라봤다. 열흘 전 맏딸 단비(17)양의 장례를 치른 아버지 조기하(45)씨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에 저장된 딸의 사진만 만지작거렸다. “정말 예쁘지 않아요? 이런 아이를…. 이 나라가 내 딸 수장한 거란 생각밖에 안 드네요.” 벌겋게 부르튼 손으로 사진 속 새초롬한 표정의 딸 얼굴을 연신 문지르던 아버지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퇴근 때마다 대문 밖에서 ‘아빠’하며 반기던 딸과 충격으로 앓아 누운 아내 생각에 눈물이 절로 맺혔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새끼 시신 찾은 걸 감사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치밀어도 지금은 자식 생사도 모르는 분들 위로가 먼저지요.”
버스에 오르자마자 선실에서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며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던 한 아버지도 기력을 잃었는지 멍하게 허공만 바라봤다. 집에 혼자 두고 온 막내 딸과 통화하던 어머니 김모(49)씨는 애써 목을 가다듬고 “응, 우리 딸. 학교 잘 다녀왔지? 엄마 금방 갈게, 사랑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서는데 중 3 막내 딸이 내 발에 양말을 신겨주면서 ‘엄마, 내가 오빠 몫까지 잘 할게요’라고 했다”며 흐느꼈다.
해가 벌겋게 익어간 팽목항에서 실종자 엄마의 눈시울은 또 붉어졌다. 흰 슬리퍼와 파란 조끼 차림의 그녀를 검정 상의를 입은 유가족 엄마가 끌어안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어깨에 눈물을 적셨다. 내려온 아버지들은 주저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은 아버지의 말벗이 됐다.
유가족들은 진도 실내체육관도 찾아 남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를 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애태우는 이들의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을 하며 아픔을 다독였다.
일부 실종자 가족은 유족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감정이 북받쳐 흐느끼기도 했다. 한 실종자 가족이 “우리 아이는 아직도 안 나왔다”며 눈물을 보이자 유가족은 “반드시 나올 거다. 그때까지 같이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자식을 찾아 하늘로 보낸 유가족들은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부모의 쓰라린 가슴을 위로하다가 이날 저녁 9시쯤 무거운 몸을 안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실었다.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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