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지났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은 기적이었으나 기적은 우리를 피해갔다. 피해간 것뿐만이 아니라 해독 불가능한 미증유의 수치심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참극 앞에서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이 엄청난 실수에 가담한 기분이 들어 손발이 저릿저릿한 날들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생각하다가 나의 잘못이 그만 나사 하나를 엉뚱한 곳에 조여 이런 일이 닥쳤을 거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도 사적인 죄책감으로부터 조금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저마다 조금씩은 대충 살고 있었다는 뉘우침으로 이제야, 이 일이 있고서야 미안하다며 저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것 아닌지.
그럴 수 있다고 넘긴 일들이 쌓이고 쌓인 거라고, 그럴 수 없었던 일들까지도 그렇고 그렇게 막음 되어 이처럼 엄청나게 그럴 수 없는 일이 되고 만 거라고 치부하기엔 이번 같은 일은 정말이지 수도 없이 있어 왔다. 1도로 벌어진 틈을 ‘그쯤이야’하고 내버려두었다가 180도로 벌어져 버린 형국의 일들은 수두룩했다. 단 크고 작은 차이만 보였을 뿐.
수첩을 들춰보니 6개월 전 나는 제주도의 강정엘 가느라 세월호를 탄 적이 있었다. 배에서의 잠이 익숙하지 않아 늦은 밤까지 배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었기에 배의 구조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3층과 4층, 5층을 잇는 선체 바깥 계단과 복도, 그리고 매점과 식당의 페인트 색깔까지 선명하게 떠올라 어느 밤은 체기가 덮쳐 왔다.
내 안에서 치솟는 울혈 따위야 대수겠는가. 더디고 느린 데다 그 안에 아둔함과 무능과 실수를 탑재한 ‘세월’의 악취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그 악취로 모두가 질식한 상태인데. 나는 침통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직접 겪은 한 가지 일을 생각했다.
파리의 공항에서였다. 밤 열두 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밤늦게 여러 나라로부터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들은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파리 시내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방법 두 가지밖엔 없을 시간이었다. 나는 기차를 타기로 하고 역으로 향했다. 역 구내는 기차표를 사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워낙 늦은 시간이라 매표창구의 문이 닫혀 있어 기계로만 표를 사야햇다. 줄은 더뎠다. 카드로 계산하는 사람, 환전을 못 해 현금이 없거나, 기계에 서툰 사람들이 한데 엉켜 표를 사다 보니 시간이 한참을 지나게 된 것이다.
어느덧 한 시가 넘자, 한 역무원이 기차표를 사려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파리 시내로 가는 마지막 기차가 도착했습니다. 기차표를 못 끊은 분들은 티켓을 끊지 말고 기차에 올라주세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는 사이, 파리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행동하고 있었고 나 같은 외국인은 어안이 벙벙해 쭈뼛쭈뼛하다가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기차표가 없는데 어떻게 타란 말인가요?” 그러자 역무원이 내 등을 슬쩍 밀면서 말했다. “서둘러요. 여기서 잘 게 아니라면!”개찰구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기차표를 끊지 못한 사람들이 200여 명은 될 거라는 사실을 기차로 향하면서 알았다. 사람들이 마지막 기차를 타지 못하는 게 공항역 직원하고 대체 무슨 상관일까. 1인당 만 4,000원가량 하는 200여 명의 기차요금은 언제 누가 받으러 오는 건가. 한 번도 ‘그럴듯한 나라’에 살아보지 못한 나는 없어 보이게도 난데없는 배려에 마음이 걸려서 기차에 오르면서도 좀 그랬다. 세심한 배려를, 그것도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배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분명 내가 ‘괜찮은 나라’에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 공항역 직원이 각 역에 전달해 놓았는지 역에 내리니 개찰구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 정도 에피소드는 동화(童話)급이다. 나라의 시스템을 통해 좋은 동화의 본보기를 체험한 적 없는 우리에게는 그렇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물을 수 없는 큰일 앞에 우리는 놓여 있다. 알고 있어서 차마 물을 수 없는 물음 앞에 서 있다. 결국, 가짜로 살고 있었으며, 정상(正常)이 아닌 채로 살아왔기에 이 모양인 것.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의 가짜인가. 과연 우리나라는 얼마만큼의 정상인가.
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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