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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모아 가스레인지 사 온, 미운 데 하나 없는 외아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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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모아 가스레인지 사 온, 미운 데 하나 없는 외아들인데…"

입력
2014.04.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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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기지 않네요. 야구장 같이 갈 내 아들이 아직 바닷속에 있다는 게….”

세월호 침몰 보름째인 3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단원고 임모(17)군의 아버지(44)는 이날도 선착장에서 야속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아들 친구 아버지들 중 일부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팽목항을 잠시 떠났지만 그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 의왕시에서 결혼 예식업을 하는 그는 여느 때 같으면 결혼 시즌이라 한창 분주할 테지만 형에게 일을 맡겼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입술은 부르텄고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렸다. 사흘 전부터 체기가 이어져 제대로 된 밥 한끼 먹지 못했다.

그가 내민 스마트폰 배경화면에선 아들이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사고가 난 16일 오전 8시 52분 아들이 카카오톡으로 보낸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다. 주고 받은 대화들에선 부자의 끈끈한 정이 묻어났다. 사고 전날 밤 아버지는 ‘보고 싶다…. 우리 애기’라고 살갑게 말을 걸었고, 아들은 다음날 눈뜨자마자 ‘me, too~(나도)’라고 답했다. 아들은 잠들기 전 세월호 외관과 객실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야구보고 있어 ㅋㅋㅋ’라는 아들의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아버지는 외아들과의 추억을 되짚었다.

부자는 친구였다. KIA 타이거즈 팬인 부자는 팀이 잠실야구장에서 원정 경기할 때면 함께 3루 쪽 관중석에 앉아 응원했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생 땐 엄마만 찾더니 중학교 2학년 때부턴 같이 야구 보면서 저를 많이 따랐어요. 주말마다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도 밀어주고….” 임군은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면서도 틈틈이 설거지 등 집안 일을 거들고, 주말에는 아빠 일도 도왔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가스레인지를 엄마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아인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사고 당일 오전 11시 30분 학교에서 전해들은 소식을 지인들과의 모바일 대화방에 올렸다. ‘세월호에 탄 아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도중 짙은 안개 때문에 암초에 부딪혀 침몰사고…. 전원 구조됐다는데 아직 걱정이네요.’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나 여겼다”고 했다. 전원 구조 소식이 엉터리로 드러나고도 우리 아들은 괜찮겠지 생각했다는 그는 사고 후 당국의 어설픈 대응에 이제 분노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300여명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아들을 찾고 나면 반드시 이번 사고 원인을 다 알아내 책임을 묻겠다”며 주먹을 쥐었다. “1년에 꼭 한번은 팽목항에 와서 소주잔을 기울일 겁니다. 물 속에서 숨 못 쉬며 죽어갔을 그 어린 것들을 어떻게 잊겠어요.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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