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성향을 가진 두 영화제가 서울에서 잇달아 열린다. 서울환경영화제가 8일 막을 올려 15일까지 펼쳐지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9일 개막해 6월 5일 막을 내린다. 서울환경영화제는 올해로 11번째를 맞고 서울여성영화제는 16회째 치러진다. 특정 주제를 내세운 영화제론 국내에서 드물게 긴 역사를 지닌 영화제들이다.
서울환경영화제는 35개국 111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아시아 최대 환경영화제를 자부하는 이 영화제를 통해 환경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과 환경영화의 조류를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서울 신문로 예술영화전용관 씨네큐브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둥지로 삼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개막작 ‘킹 오브 썸머’(감독 조던 복트-로버츠)다. 부모와의 사이가 원활하지 못한 두 청년이 집을 떠나 숲 속에서 자족생활을 일궈가는 과정을 그렸다. 재활용품으로 집을 만들고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던 두 사람이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비춘다.
개막작 외에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여럿 있다. ‘푸드가이드 투 러브’(감독 테레사 드펠레그리ㆍ도미닉 하라리)는 육식주의자인 바람둥이 음식 칼럼니스트와 채식주의자 큐레이터의 연애이야기로 먹거리를 둘러싼 환경문제를 전한다.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해 직원들 체중감량에 나선 한 회사의 식당 모습을 그려낸 ‘타니타의 사원식당’도 흥미로운 소재로 관객을 기다린다. 도호쿠대지진 이후 흔들리는 일본 청춘을 묘사한 ‘고향길’(감독 구보타 나오), 소년과 야생늑대의 우정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그려낸 ‘드루이드 피크’(감독 마니 젤닉)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그랜드 센트럴’(감독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도 눈여겨봐야 할 영화다.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의 사랑을 통해 광기 어린 현대인의 삶을 에둘러 비판한다. 반전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그날이 오면’(감독 스탠리 크레이머)도 상영된다. 핵전쟁 이후 방사능으로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증을 그린 이 영화는 35㎜프린트로 만날 수 있다.
30개국 99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서울여성영화제 개막작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화 ‘그녀들을 위하여’(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다. 보스니아 관광에 나선 호주여성의 눈으로 보스니아 내전 중 벌어진 참상을 돌아본다. 즈바니치 감독은 2006년 장편 데뷔작인 ‘그르바비차’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대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영화계에서 도발적인 여성 감독으로 꼽히는 카트린느 브레야의 신작 ‘어뷰즈 오브 위크니스’를 만날 수 있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깨어난 뒤에도 영화 만들기에 나선 한 여성 감독의 이야기를 그린다. TV에서 본 유명 사기꾼에게 반해 그를 캐스팅하려다 사기를 당하지만 뜻밖의 환희를 얻게 되는 여성 감독의 괴이한 사연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만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도 흥미롭다. 여성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자전거 타기 꿈을 이루려는 10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일본 유명 원로 여배우 가가와 교코의 출연작들도 상영된다. 회고전 ‘카메라 앞의 삶-리/액션하는 여배우, 가가와 교코’로 ‘동경 이야기’(감독 오즈 야스즈로)와 ‘치카마츠 이야기’(감독 미조구치 겐지), ‘마다다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엄마’(감독 나루세 미키오) 등 일본 고전영화 8편을 만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그린 변영주 감독의 국내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도 상영된다. 영화제는 서울 신촌역로 메가박스 신촌점에서 열린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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