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데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생필품이 아닌 생존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문화상품(영화나 뮤지컬, 음반, 책, 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지금처럼 국가적 위난 앞에서 전 사회가 슬픔과 애도의 분위기에 침잠해 있는 상황에서 큰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무력감은 대부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망연함에서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상품을 기획해서 내놓았을 때, 그 의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짐작하는 것조차도 살아남은 자의 사치처럼 느껴진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을 내놓으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근심을 피할 수 없을 것 같고, 치유나 위로에 필요한 책을 내놓으면, 내가 지금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라는 노파심으로 괴로울 것만 같은 것이다. 수위와 타이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겠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조차도 영악하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자기검열이 심한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어떤 이에겐 치열하게 지속되어야 하는 삶일지라도, 거대하고 깊은 죽음이 역설적으로 요구하는 삶의 명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연약한 것 같다. 부당한 죽음은 부정한 삶보다 삼엄하다. 우리가 지금 절망하는 이유가 삶을 비관하는 데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 죽음으로부터 삶을 오래오래 배워야 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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